김현진©㈜엠피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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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다음은 인터뷰①에서 이어 집니다.] (해당 내용 중에 공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 아니타와 긴 탐색전을 끝내고 데이비가 진실의 입을 열게 되는 부분은 어디인가.

“얼마 전 읽은 시집 서문에 ‘조금씩 어긋나는 대화가 좋다. 다 이해할 수 없어서 존중하게 되니까.’라는 글이 있었어요. 이 시인의 말처럼 가끔씩 정말 서로 어긋나는 이야기가 좋아요. 내가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지 않고, 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더 존중하게 되잖아요. 데이비와 아니타도 길고 긴 서로의 어긋난 대화 속에서 이런 과정을 거치죠. 데이비가 듣고 싶은 건 ‘빈센트’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니타는 자신의 이야기들을 갑자기 마구 쏟아내요. 처음엔 어긋나는 대화에 관심이 없었던, 혹여나 그 이야기 속에서 빈센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을까 오직 빈센트 이야기만 기다리던 데이비도 점점 그 이야기들 속에서 ‘아니타’를 더욱 깊게 이해하고, 그런 아니타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는데, 그 지점의 시작은 앞서 말한 것처럼 아니타가 혐오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같은 공장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부모님으로 부터, 또 수많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미움 어린 눈빛에 대한 경험을 데이비에게 이야기해주는 그 시점이요.”

Q. ‘빈센트 리버’가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 우리나라 정서와 다를 수 있지만, 아니타와 빈센트의 키스신 장면은 조금 놀라운 것 같다. 서로를 통해서 빈센트를 보지 않았나 짐작하지만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희도 내부적으로 많이 고민을 했던 장면이에요. 작품이 쓰인 국가와 우리와 문화적 차이도 있고, 해석도 정말 다양한 여지가 있는 장면이니까. 이게 어느 정도 머리로 큰 틀은 알 것 같은데, 세세하게 들어갈수록 더욱 모르겠는 장면이었어요. 특히나 그 인물의 마음들이 어떤 상태이고 어떻게 연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이 참 어려웠어요. 연습 막바지에 저희가 그런 결론을 내렸던 걸로 기억해요. 이건 정말, 이성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아니 설명할 방법이 없는 빈센트와 아니타의 본능의 행동이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데이비와 그 방법은 조금 미숙했을지라도 진정으로 사랑했던 아들을 잃은 엄마가 그 연인, 그 아들을 다시 만나고자 했던, 남아있는 그 존재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다시 느끼고 싶었던 두 인물의 본능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것도 완벽한 설명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개인적으로는 본격적으로 그 장면을 연습하고 공연하면서 ‘이상하다.’라고 느껴진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 순간 데이비라면, 그 순간 아니타라면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공감이 되나 봐요.”

김현진©㈜엠피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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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에서 아니타와 데이비는 빈센트를 이야기하지만, 빈센트는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뮤지컬 ‘레베카’처럼. 데이비는 빈센트의 어떤 모습을 좋아했을 거 같나.

“데이비는 스스로 선택한 가짜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에요. 완벽한 약혼자, 완벽한 남자친구, 완벽한 아들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이 어떠하다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 바람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온 사람이죠. 그러다 보니 그의 삶 속에서 진짜 사랑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아니 어쩌면 진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해 그런 삶을 선택했을 수도 있고요. 사랑에 목말라서. 그러나 빈센트를 만나면서 데이비는 달라져요. 어떤 모습 때문만은 아닌 거예요. 그냥 그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깨달은 거예요. 불이 꺼져있던 방에 갑자기 불이 탁 켜진 것처럼, 갑자기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이 지구 바닥에 부딪혀 큰 구멍을 만들어 낸 것처럼 말이에요. 빈센트를 통해 데이비가 진짜를 경험하게 된 거죠. 진짜 감정, 진짜 자신을.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데이비는 빈센트의 어떤 모습 때문에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그의 외모나 등등의 조건들, 그리고 자신처럼 무언가 어딘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 보이는, 외로워 보이는, 가짜지만 진짜처럼 보이려 애쓰는 모습들이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그러나 무엇보다 데이비는 빈센트의 존재 자체에 끌린거라 생각해요. 꼭 자석의 양극처럼. 그리고 연출님 말씀처럼 진짜를 경험한 사람을 결코 가짜 안에서 살아갈 수 없어요. 데이비는 그간 데이비를 성적 욕망의 해소 대상으로 여겼던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땐 미쳐 알지 못했지만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인정해준 빈센트를 만나 진짜를 경험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겉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속에 담겨있는 것을 더 궁금해하고 그걸 사랑하는 빈센트를 만남으로써, 다시 가짜로 돌아가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Q. 아니타가 빈센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자 흥미롭게 듣는 데이비가 귀여웠는데, 현진 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 중에서 지금 바로 떠오르는 게 있나.

“지금 제일 먼저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건은,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이야기에요. 갑작스럽게 비가 오는 날이면, 학부모님들이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 서 계시고는 했는데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딱 나와보니까 엄마가 교문 앞에 우산을 들고 계시는 거예요. 그때가 동생이 아주 어릴 때라, 비가 와도 엄마가 집 밖으로 잘 못 나오셨었거든요. 그래서 보통은 친구들의 우산을 같이 쓰고 하교하고는 했는데, 그날엔 엄마가 딱 교문에 서 계시는거에요!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가 왔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아주 큰 소리로 ‘엄마!’를 외치면서 달려갔죠. 그런데 막상 달려서 엄마한테 다가간 순간 우산 속에 있는 사람이 우리 엄마가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엄마가 평소에 입던 옷과 비슷한 옷을 입은 전혀 모르는 아주머니였어요. 우산에 얼굴이 가려서 잘 안 보이는 바람에 엉뚱한 분을 우리 엄마로 착각하고 달려간 거예요. 일부로 친구들 들으라고 엄청 큰소리로 엄마! 까지 부르면서 달려왔는데, 하하. 그 아주머니랑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말 너무 너무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친구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그래서 집까지 계속 ‘엄마!’를 외치면서 달려갔어요. 아주머니를 보고 엄마를 부른 게 아니라 그냥 나는 원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면서 하교하는 아이인것처럼.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게 더 부끄러운 일 같네요. 온 동네를 엄마를 부르며 달려갔으니 말이에요. (웃음)”

김현진, 남기애©㈜엠피앤컴퍼니
김현진, 남기애©㈜엠피앤컴퍼니

Q. ‘아니타’ 역에 남기애, 정재은, 우미화 배우가 함께하는데 세 분의 아니타는 어떻게 다른가.

“음, 아니타에게 ‘컵’이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니까, 이번엔 세 종류의 컵으로 한번 설명해 볼게요! 먼저 남기애 선배님의 아니타는 아주 튼튼해 보이는 두꺼운 컵 같아요. 무늬도 큼직큼직하게 장식되어있는 고급스럽고 튼튼한 컵이요. 하지만, 컵을 만 들때 어떤 실수로 강도가 매우 약해진 컵이에요.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을 것처럼 생겼지만, 조금만 세게 쥐기만 해도 퍽 하고 터져버리는, 보기에 비해 아주 약한 컵이요. 정재은 선배님의 아니타는 어느 한 유럽의 오래된 가게에 전시되어있는 화려하고 예쁜 찻잔 같아요. 크기도 그렇게 크지 않고, 손잡이도 달려있고, 꽃무늬가 그려져 있고 군데군데 금장식도 되어있는 그런 컵이요. 그런데 컵 안쪽을 들여다보면 몇 군데 금이 가 있어서 차를 담아 놓으면 어느새 그 틈으로 다 새어 나가 버리고 마는 그런 컵 같은 아니타죠. 마지막으로 우미화 선배님의 아니타는, 겉보기에 크게 화려하지도 않고, 두껍지도 않은 어쩌면 평범해 보이는 컵이에요. 하지만, 소재가 유리가 아닌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컵이에요. 충격에도 강하고, 쉽게 깨어지지도 오염되지도 않는 컵이죠. 나름 열심히 생각해서 비유를 해 보았는데, 관객분들께서도 저의 이런 비유에 동의하실지 궁금해지네요. 하하.”

Q. ‘빈센트 리버’에 기차 소리가 나오던데 기찻길 근처라는 배경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은 연출님과 음향디자이너님께서 더 정확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연습실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과 제 생각을 버무려 답변을 드리자면, 성경에 나온 새벽닭 울음소리가 저는 생각나요.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인 베드로가, 예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가신 후에 그들을 따라 간 뜰, 숯불 앞에서 세 번 예수를 부인해요. 예수께서 미리 베드로에게 ‘새벽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예언하신 것처럼. 그리고 나중에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다시 베드로를 찾아가시는데, 물고기를 요리하기 위해 피워놓은 숯불 앞에서 그때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을 던지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요.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숯불 앞에서 다시 베드로를 만나신 예수는 베드로에게 자신을 부인했던 만큼 다시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완벽한 회복을 위해. 특히, 성경에서 3이란 숫자는 완전함을 상징하거든요. 우리 작품에서는 기차 소리가 세 번 등장해요. 처음 아니타가 집으로 들어왔을 때 한 번, 아니타와 데이비가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빈센트의 날개가 떠오르기 전에 한 번, 그리고 발 마사지 이후 데이비와 아니타가 함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순간 한 번. 그러니까, 이 기차 소리는 데이비가 빈센트를 부인했던, 외면했던 그 장소. 마치 베드로의 숯불과 같은 그 기차역의 화장실을 생각나게 하는 소리이자, 이 둘이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소리에요. 정작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이번엔, 전구를 사러 갔다가 전구만 잊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빈센트가 있는 그곳으로 잊지 말고 가라고. 베드로가 새벽닭 소리를 듣고 예수께서 하신 예언이 생각나 그자리에서 펑펑 울었던 것처럼 데이비는 실제로 들리는 혹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를 통해 빈센트를 떠올리고, 그곳으로 다시 가야지만, 그곳에서 다시 빈스를 만나야지만,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걸 다시 떠올리게 되는 거죠. 연출님과 음향디자이너님의 의도와 아주 정확하게 맞는 답변은 아닐 수 있지만, 전 그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김현진©㈜엠피앤컴퍼니
김현진©㈜엠피앤컴퍼니

Q. 후반에 데이비의 독백이 20분가량 휘몰아친다. 말 그대로 휘몰아치는 독백을 할 때 연기하는 배우는 어떤 느낌인가.

“배우로서 정말 의미 있고 신나는 경험이에요. 사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만 해도 이 긴 독백 대사 를 언제 다 외우냐고 한동안 징징거렸어요. (웃음) 그런데 막상 힘들지만 다 외우고 나니, 앞선 1시간 40분간 데이비로서 숨겨오던 모든 것을 토해내는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주고받는 대사와 다르게 혼자서 그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아요. 템포와 강약, 표현해 내는 방식들을 오로지 그 순간 나 스스로 결정하고 그 모든 대사의 지점들을 연결해 나간다는 건 정말 매력 있는 작업이죠. 깨알 자랑을 좀 덧붙이자면, 제가 고등학생 때 젊은 연극제에서 주관한 전국 청소년 독백 경연대회에서 수상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독백 연기를 할 때 다른 때 보다 더욱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나 봐요. (웃음)”

Q. 커튼콜 때 배우들이 웃으며 인사하니까 앞으로 아니타와 데이비가 저렇게 웃으며 지낼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데이비가 앞으로 어떻게 지냈으면 하나.

“날마다 마지막 장면의 느낌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데이비로서 바라는 지점은 변함이 없어요. 이 이후에 바로 그렇게 되든, 아니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든, 사랑하는 엄마를 잃어버린 데이비와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낸 아니타가 서로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 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 그렇게 두 인물이 계속해서 진정한 용서와 회복 그리고 사랑을 끊임없이 경험하는 것. 저는 그렇게 되기를 언제나 바라요.”

Q. ‘빈센트 리버’를 통해 배우 김현진 자체가 많은 칭찬을 받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은 무엇인가.

“공연을 하면서 만난, 가까운 지인이 얼마 전에 공연을 보러 왔었어요. 그때 저에게 그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무대에 너는 없고 데이비만 있던데? 그리고 내가 김현진이 연기하는 모습은 정말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직도 모르는 너의 모습들이 참 많더라.’ 가장 최근이기도 하고, 또 인상 깊었던 칭찬이라 그런지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공연이 끝나고 관객분들이 전해주셨던 편지에도 그런 말들이 있었는데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데이비라는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면서, 무엇보다도 저에게 솔직해지려고 노력했거든요. ‘무언가를 애써 찾고 만들어 표현하기보다 데이비와 나의 공통점이 될 수 있는 내 안에 있는 모습들을 솔직하게 꺼내 놓아보자.’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무대 위에서 제가 보이지 않고 데이비가 보인다는 말을 들으니까 마치 내 솔직함에 대한 보상과 칭찬 같아서 더욱 용기가 나고 기분이 좋아요. 이번 경험을 통해 무대 위에서 더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많이 칭찬해주신 만큼 앞으로도 더 솔직한 모습으로 보답할 수 있게 노력할게요. 고맙습니다!”

Q. ‘현진 씨에게 ‘빈센트 리버’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아주 많은 말들이 입가에 맴도는데, 그런 것들을 다 삼키고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번 맡은 후에 쉽게 잊혀지지 않는 아주 진한 향기의 향수처럼. 그렇게 오래, 그리고 진하게 남을 것 같다고.”

한편, 연극 ‘빈센트 리버’는 10월 2일까지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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