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엠피앤컴퍼니
김현진©㈜엠피앤컴퍼니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그야말로 김현진의 재발견이다. 연극 ‘빈센트 리버’에서 ‘데이비’ 역을 맡은 김현진의 연기를 보고 그의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진 것을 확인하게 됐다.

연극 ‘빈센트 리버’(제작 ㈜엠피앤컴퍼니)는 지난해 초연을 선보이며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영국 동부를 배경으로 한 ‘빈센트 리버’는 중년의 여성 ‘아니타’의 아들 ‘빈센트’가 혐오 범죄로 살해를 당하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들이 살해당하고 몇 주 후 ‘아니타’ 앞에 나타난 ‘데이비’는 자신이 ‘빈센트’의 시신을 가장 처음 발견한 사건의 목격자라고 밝히고 둘의 기묘한 대화가 시작된다.

김현진은 ‘빈센트 리버’ 재연에 새롭게 합류해 본인만의 캐릭터 해석으로 호소력 짙은 연기를 보여준다. ‘쓰릴 미’, ‘스프링 어웨이크닝’, ‘엘리펀트 송’, ‘라흐마니노프’ 등 많은 작품에서 큰 사랑을 받는 김현진. 최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김현진과 일문일답이다.] (해당 내용 중에 공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 ‘빈센트 리버’ 캐스팅이 되고 연습을 하는 중에 이 작품 인터뷰를 꼭 하고 싶다는 말했다고 들었다. 작품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고, 꼭 인터뷰가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 줄지 매우 궁금하다.

“작년, 빈센트리버 관계자 분으로부터 공연을 꼭 봤으면 좋겠다고 추천을 받았는데, 공연을 보고 나오자마자 대표님께 개인적으로 장문의 감상평을 보냈어요. 공연이 너무 좋았어서요. 그때 대표님께서 ‘빈센트 리버’ 공연을 제가 이렇게 받아들였다는 것에 대해 뭔가를 생각하시고 이번 시즌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주지 않으셨을까요? 제 감상에 대한 동의의 뜻으로요. (웃음) 이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제가 관객으로서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받았던 감정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바로 ‘불편함’ 이요. 우리가 평소 어떤 사물을 사용할 때 무언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물을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혹은, 그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잖아요. 그렇듯 사회에서도 우리가 무언가 불편하다고 느낄 때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발걸음이 시작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빈센트 리버’가 관객분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닌지만 이 공연을 보시면서 제가 이 공연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그 ‘불편함’을 함께 느끼실 수 있기를 바라요. 그렇게 우리 안에 더 나은 어딘가로 나아갈 수 있는 한 걸음이 함께 시작되기를요. 저도 ‘빈센트 리버’ 안에 나온 문제들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모르지만, 이 공연을 통해, 적어도 이 극장에 있는 우리에게 한 번쯤은 새로운 물결이 흘러가면 좋을 것 같아요.”

김현진©㈜엠피앤컴퍼니
김현진©㈜엠피앤컴퍼니

Q. ‘빈센트 리버’ 재연에 새로 합류하면서 어렵거나 부담을 가진 부분은 없었나.

“연습이 시작되고 한동안은 데이비가 아니타 주변을 몇 주간 머문 것처럼 저도 데이비 근처를 배회하며 머문 느낌이었어요. 제가 스스로 저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데이비의 이미지가 다른 지점이 있었고, 또 그게 극대화되어 있다고 느꼈거든요. 또 이번에도 함께하는 강승호 데이비의 공연을 작년에 보았고, 아직도 그 강렬한 잔상이 남아있다 보니 그것을 잘 따라가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도 있었어요. 이미 4~5주 동안 대사를 외우며 장면 연습을 하고 있지만 아직 데이비를 온전히 만나지는 못한 느낌이랄까. 데이비의 대사 중 한 표현처럼 마치 제가 진짜가 아닌 가짜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처럼,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데이비는 이렇게 행동해야 해’란 편견을 툭 내려놓고, 에라 모르겠다! 라는 마음으로 대본 안에서 그 순간의 감정들을 따라가며 연습을 진행한 날이 있었는데, 그날 동료들과 선배님들에게 많은 격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연출님께서도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데이비’가 어떤 모습일지 감을 잡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 ‘아, 내가 조금 남들과 다를 순 있어도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믿음이 생겼죠. 저는 대본을 읽으면서, 제 마음속에 훅 하고 들어오는 문장들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에 특히 들어왔던 문장들은 ‘길을 걷다가 자꾸 눈물이 터져요. 별거 아닌 거에도 자꾸 눈물이 터져요’ 그리고 ‘할 수 없었어요. 우리 엄마니까!’ ‘이게 막 화가 나서 소리 지르는 것 같으면서, 눈이빠져라 우는 것 같아요.’ ‘마치 빈스가 세상을 폭발시켜 버리는 것 같아! 티브이 색상도를 막 끝까지 올려놓은 것 같아.’와 같은 문장들이었어요. 그 문장들이 꼭 데이비는 이런 아이야! 라고 저에게 가르쳐 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런 문장들에서 알 수 있는 데이비의 모습을 제 안에서 찾으려 노력했어요.”

Q. 데이비가 극 초반엔 빈센트의 살해 현장 목격자로 등장하지만, 극의 중반부터 빈센트의 연인으로 밝혀진다. 데이비로서 극의 초반에는 이 부분이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데 혹, 뒷부분의 반전을 위해 진실을 숨기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

“작년 연극 ‘엘리펀트 송’에서 마이클이란 인물을 연기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마이클도 관객이 결말을 알지 못하게 숨겨야 하는 인물이었죠. 그때도 이와 같은 고민을 깊게 했었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은 ‘그냥 그 인물로서 그 상황들에 집중해보자. 숨겨야한다 혹은 어디를 들켜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였어요. 왜, 어린아이들이 자기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엄마 앞에서 아무리 열심히 거짓말을 해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다 보이고, 다 티가 나잖아요. 하지만 그 아이들은 그 순간 최선을 다하며, 혹은 스스로 정말로 그랬다고 믿으며 말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런 행동들을 판단하는 건 그 모습을 보는 대상의 몫이고요. 우리 공연에서는 아니타 그리고 관객 여러분들이 그 대상이 되시는 거니까 ‘나는 그냥 데이비로서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그 부분이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더라고요. 그리고 뒤에 밝혀질 진실의 어느 부분들이 미리 드러나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건 그 진실의 ‘사실’들이 아닌 데이비가 그 진실 속에서 느낀 ‘감정’들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김현진, 남기애©㈜엠피앤컴퍼니
김현진, 남기애©㈜엠피앤컴퍼니

Q. 데이비에게 아니타는 어떤 존재일까. 자신의 연인 빈센트의 엄마이자 다른 의미가 있을까.

“연습실에서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이 작품이 마치 거대한 고해성사 같다는 말이요. 죄를 지은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너무 어려워서 꽤 많은 범죄자가 자수를 선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죄책감 앞에서 진실을 토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게 기본적인 사람의 양심이죠. 그러니까 데이비는 빈센트에 대한 죄책감, 그 이야기를 토해내지 않고서는 제대로 숨쉬기조차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 아이이고,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데이비는 본능적으로 아니타를 찾아간 것이라 생각해요. 누구보다도 가장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 이야기를 대한 처분을 내릴 수 있는 존재를요. 마치, 고해성사를 위해 신부님을 찾아가는 신자처럼. 데이비는 빈센트와 끊임없이 나눴던 대화들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작 아니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지 못했을거라 생각해요. 빈센트도 본능적으로 자신을 거부하고 있는 엄마에 대한 벽이 있었을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처음 데이비가 아니타의 집으로 들어왔을 때,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는 아니타처럼 아니타를 관찰하죠.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 데이비가 알게 되는 사실은 ‘이 아줌마, 나와 같은 그리고 자기 아들인 빈센트와 같은 사람들을 혐오하는구나.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 대하서 잘 알지 못하는구나 너무도.’라는 지점이에요. 그래서 처음엔 혐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아니타에게 자신과 빈센트의 이야기를 하기가 겁도 나고 망설여지지만, 자기 아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올바르게 추모하고 있지 못한 아니타를 위해 오히려 더욱더 진실을 말해주어야 한다는 용기를 얻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죠. 또 그사이에 또 아니타가 겪었던 혐오에 대해서도 들으며, 아니타를 좀 더 이해하게 되는 지점들도 있고요. 이야기하다 보니 데이비에게 아니타는 정말 다양한 그리고 거대한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다음은 인터뷰②에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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