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한 전)남양주시장.©열린뉴스통신ONA
조광한 전)남양주시장.©열린뉴스통신ONA

(서울=열린뉴스통신) 유연수 기자 = 조광한 전)남양주시장이 14일 시민들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통을 이어갔다.

조 전 시장은 세계 최고 관광 대국인 스페인이라는 나라로 시민들에게 역사와 전쟁을 통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스페인 해군의 무적함대는 제국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역사상 '스페인의 힘(力)'을 상징하지만, 무려 800년 동안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었고 신대륙을 발견하고 대항해시대를 연 콜럼버스는 정작 스페인 사람이 아닌 이탈리아 태생이다."라며 스페인의 역사를 설명했다.

 

- 다음은 조광한 전)남양주시장이 올린 전문이다.

(前) 남양주시장 조광한입니다.

 ▫'상처(傷處)' 그리고 '기억(記憶)' - 4

3편에서 스페인의 국민 문학이며 대표 고전(古典)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통해
'자유'의 가치와 소중함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스페인 역사와 정치가 수십 년 동안
양극화한 결과 발생한 스페인 내란을 살펴보겠습니다.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운 일상을 되찾은 요즘,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스페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스페인은 세계 최고의 관광 대국으로
유럽에서 이탈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헌법에서는 국호를 '에스파냐'로 표기하며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스페인'은 영어식 국명입니다.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척 많습니다.
무적함대, 콜럼버스, 투우, 돈키호테, 순례길 등등..

또,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흥미로운 점도 많습니다.
스페인 해군의 무적함대는 제국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역사상 '스페인의 힘(力)'을 상징하지만,
무려 800년 동안 이슬람세력의 지배를 받았었고
신대륙을 발견하고 대항해시대를 연 콜럼버스는
정작 스페인 사람이 아닌 이탈리아 태생입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도 있는데..
바다에 접한 반도 국가이고,
무능한 정부가 빼앗긴 주권을 되찾았으며
피비린내 나는 내전 후에 독재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역사를 가진 국가입니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일어난
스페인 내전(內戰)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前哨戰)이자,
민주주의, 공산주의,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등
온갖 이념(理念)이 각축전을 벌인 20세기 최고의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고 불립니다.

1931년의 선거는 좌파, 1933년은 우파,
1936년 선거에서는 다시 좌파연합인
인민전선이 승리하며 정권교체를 반복했고,
좌파 정권의 탄생과 개혁에 불안을 느낀 군부가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장군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며 대규모 내전이 발발하였습니다.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기 전에
실전연습과 무기실험을 위해 프랑코 장군에게
물자, 무기, 비행기, 군대를 지원했습니다.

반면 공화파는 소련의 지원을 받았으나 병력은 부족했고
미국과 유럽 등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국제여단"이
조직됐는데 53개 이상 국가에서 3만 5천 명 이상의
의용병들이 참가하여 스페인 국민들을 위해 싸웠습니다.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헤밍웨이, 조지 오웰,
생떽쥐페리,앙드레 말로,로버트 카파,빌리 브란트 등
수많은 지식인과 젊은이가 정의와 양심의 이름으로
기꺼이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섰고
내전에 참여한 경험을 작품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유혈이 많은 소모전으로 이어졌고
양쪽 모두 잔학행위가 심했습니다.
전선에서만 약 100만 명이 전사하였고,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20만 명이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
로버트 카파의 사진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도
모두 스페인 내전이 배경인 유명한 작품들입니다.
이 외에도 스페인 내전을 비판하거나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워낙 많습니다.

특히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 Guernica>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이름으로
1937년 4월 26일 프랑코 군을 지원하는
나치 독일 콘도르 군단 비행기가 이 마을을 맹폭하여
1600여 명이 사망하고 900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도시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시민이 겪은
비극에 분노하여 그린 그림입니다.

전략적 요충지 인근이던 이 마을은
스페인이 아닌 독일이 직접 명령권을 갖고
1630시간 동안 정찰을 거친 후
다리 파괴를 첫 번째 목표로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폭격엔 새로 개발한 신무기가 동원됐고
고성능 폭격기, 경비행기 폭발물과
총 24대의 폭격기가 게르니카 상공에서
4시간동안 50톤에 달하는 폭발물로 집중 폭격했습니다.

폭격으로 게르니카 일대는 엄청난 공황상태에 빠졌으며
전체 건물의 80%가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정작 목표로 했던 다리 파괴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민간인들의 피를 본 스페인 내전은
1939년 4월 프랑코 장군의 군부가
마드리드를 함락시키면서 반란군이 승리했고
이후 종신 권력을 얻어 1975년 프랑코 장군이
사망할 때까지 스페인을 통치했습니다.

프랑코 정권은 유럽의 마지막 군사 정권으로 불리는데
집권 후 좌파 탄압, 비밀경찰을 통한 통제 등
독재 정치로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했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권력을 얻으려는 집단의 이념이
다른 집단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무고하고 힘없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고
더 나아가 더 큰 집단인 타국 열강들의 참여로
더욱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프랑코 사망 후 스페인은 독재 정권 잔재를 청산한다며
프랑코가 붙였던 국가(國歌)의 가사를 없앴고
국가(國歌)가 나올 때 따라 부르지 않는 국민들이
애국심이 없다고 오해받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지원까지 받으며
수많은 자국민의 목숨을 빼앗아 얻은 권력을
죽을 때까지 누린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죽어서도 자국민에게 국가(國歌)를 따라부를
자유마저 빼앗았습니다.

자유를 빼앗는 여러 폭력 중에
최악의 폭력이 전쟁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불행하게도 전쟁의 역사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전쟁은
자국민끼리 싸우는 내전입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위해 전쟁을 했던 것일까요..?

PS)게르니카(Guernica)

피카소 회화의 대표작 중 하나.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이름으로
스페인 내란 중, 1937년 4월 26일 독일 비행기가
이 마을을 맹폭하여 1600여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남. 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가
동년의 파리만국박람회 스페인관을 위해
그 부조리와 비극을 테마로 약 2개월의
단기간으로 대작 『게르니카』를 완성시킴.

전쟁의 광포성과 운명의 장난 밑에
무력한 인간의 비참함이
투우에서의 빛과 어둠의 상극극(相克劇)을 빌어
상징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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