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라.(제공=㈜엠피엔컴퍼니)
배나라.(제공=㈜엠피엔컴퍼니)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다음은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Q. 나라 씨가 생각하는 리차드의 강력한 키워드는 무엇인가.

나라 - 열등감. 열등감으로 시작된 행위다. 리차드의 어렸을 때부터 어떤 결핍과 가정환경으로 인한 모습들을 생각해보니 자기의 결핍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친구이더라. 리차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게 네이슨인데, 그가 내 옆을 지켜주는 친구, 연인, 공조자로서 같은 길을 갈 때 나보다 앞선 생각을 하는 거 같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좋아하는 네이슨의 마음을 이용하게 된다. 중간에 떠난 이유도 내가 더 우월하지 못하다는 열등감으로 자괴감이나 떨어진 자존감 때문이며, 우월함을 찾기 위해 니체라는 무기를 찾은 거 같다. 그 친구에게 니체라는 존재 자체가 네이슨, 리차드, 니체가 앞으로의 큰 범죄로 다가서게 되는 연결고리가 아니었을까.

리차드는 네이슨이 나를 좋아한다는 걸 이용해서 점점 더 여우처럼 뱀같이 행동을 한다. 열등감으로 시작된 게 범죄, 살인의 끝까지 간 거고 결국 네이슨을 이기지 못해서 패배했다고 인정을 한다. 하지만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고 연기를 하는 배우에 대한 박수를 쳐주는 건 좋지만 실존 인물에게 안타까움, 연민, 동정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연 전에 항상 기도를 하는데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고 어떤 메시지를 받는 게 있다면 삶을 살아가는데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난 무대 위에서 쓰레기가 될 거야”라고 말하고 무대를 준비한다. (웃음) 누구나 열등감을 있다 보니 리차드에게 접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노윤, 김현진.(제공=㈜엠피엔컴퍼니)
노윤, 김현진.(제공=㈜엠피엔컴퍼니)

Q. 현진 네이슨은 극 초반의 대사의 “럭키 세븐”에 좀 더 힘을 줘서 말하던데 이유가 있나.

현진 - 그날은 저의 나침반이 럭키 세븐에 가 있지 않았나 싶다. 작년엔 확신의 네이슨이라면 올해는 저 스스로 불안함 위에 있는 네이슨이다. 올해 감정적으로 크게 느낀 게 그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리차드에 대한 욕망은 같지만, 색이 달라지는 거 같다. 이번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리차드라는 새장에 들어간 새로 빠져나갈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삶을 선택하는 네이슨으로 되는 거 같다. 저도 제가 신기하다. 공연 끝나고 나와서 ‘이렇게도 갈 수 있구나’ 느낌을 스스로 받을 때도 있다. 이번에 반성하게 된 게 어떤 거에 대한 정답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경험이 연기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 거 같다. 네이슨의 주순, 우석을 만나면서 생각의 비슷한 부분과 다른 부분을 공유하면서 ‘이렇게도 가능하구나. 이래도 되지’ 라는 걸 알아갔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지만 연습실에서 되게 힘들었다. 내가 가진 걸 깨는 게 쉽지 않지 않나. 스스로 깨보기도 하고 다시 쌓기도 하고 다른 모양을 만들어 보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저를 믿어주는 창작진과 컴퍼니와 함께하는 동료 배우들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 한다.

배나라, 이주순.(제공=㈜엠피엔컴퍼니)
배나라, 이주순.(제공=㈜엠피엔컴퍼니)

Q. 리차드와 네이슨이 1년 만에 만나는 장면에서 리차드는 네이슨에게 담뱃불을 찾는다. 네이슨이 성냥을 주자 리차드가 그 앞에서 너무 얄밉게 라이터를 꺼내는데 이때 리차드의 생각은.

나라 - 준비된 행동이 아니다. 리차드가 담배를 쥐고 있으면 네이슨이 성냥을 준비해주는 습관이 있는 관계여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날 만날 준비가 되어있나?’ 싶어서 라이터를 꺼내려다가 시험하려고 한다. 성냥을 주는 네이슨을 보면서 만족함과 동시에 놀리기 위해서 라이터를 꺼낸다. ‘넌 아직도 내 발아래 있다’는 생각이다. 현진이의 이야기에 공감되는 부분이 어느 네이슨을 만나냐에 따라 방향성이 많이 달라지는 거 같다. 그래서 매번 무대에서 살아있는 기분이 드는 경험이 든다.

결국엔 리차드는 네이슨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아닐 거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능력과 재능이 있는 이 친구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정을 취하는 존재인데, 이 친구를 괴롭히는 건 괴롭히기 위한 괴롭힘이 아니다. 나를 위한 도구이자 수단인데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이 친구에게 진심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되더라. 리차드가 마냥 세고 나쁘고 진하고 못된 성격만 가지고 있는 애는 아니고 어느 정도 진심이 있었구나 싶었던데, 어느 날 현진이랑 공연을 하다가 ‘파이널 쓰릴 미’에서 “자기야, 멍청하게 새나 보고”
라고 말하면서 제가 울었다. 마지막 신은 나이가 들어서 수십 년 후에 네이슨이 바라본 우리의 과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다정하고 사이가 좋았던 순간의 그때의 리차드로 가는 거다. 짐승이 먹이를 잡아먹듯이 보는 자세가 아니라 우리가 아름답고 좋았었던 그때를 표현하려는데, 현진이랑 하면서 너무 저릿저릿하더라. 눈물을 흘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어쩌면 리차드도 네이슨에게 진심이었겠다 느껴진 부분이었다. 그날 암전이 됐는데 현진이랑 부둥켜안고 둘이 강아지마냥 울었다.

현진 – 이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작년에는 담뱃불 장면에서 그런 모습을 보면 네이슨으로서 화가 났다. 그런데 나라랑 런을 도는데 슬프더라. ‘내가 변했을 수 있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달라진 게 있겠구나, 네이슨을 표현하는 내 방식이 달라져도 괜찮겠구나’를 느꼈다. 얼마 전 SG워너비 김진호 씨의 창법이 달라져서 아쉽다는 팬의 말에 대답해주신 말이 공감되고 도움이 많이 됐다. 배우는 저를 재료로 하는 직업이라 제가 달라지면 결과물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저의 변화들이 관객들에게도 좋은 변화로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그러면서 저희가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는 리차드와 네이슨은 나쁜 사람이다.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다. 이들을 옹호하기 위한 작품이 아닌데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의 방법은 여러 개가 있더라. 얼마 전 부모님과 가까운 바닷가를 갔는데 썰물이 빠져나간 바다를 보는데 바닷길이 수없이 있었다. 그 모든 길이 바다를 향해 있는 걸 보고 내가 알고 있는 길이라는 게 수 많은 길 중에 얼마나 지엽적이고 한정적인 길만 보고 있었나 싶었다. 네이슨과 리차드가 나쁜 사람이고 그렇게 보이기 바라지만 이들을 어떻게 표현하냐의 방식은 보는 내내 욕할 수 있고 아니면 마지막 순간에 느낄 수 있는 거다. 교수님 덕분에 관객과 배우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더 마음껏 표현해낼 때 관객도 작품으로 ‘쓰릴 미’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이번 시즌 동료 배우들을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앞서 말했듯 나라는 내게 새로운 감정들을 불러일으켜 준 리차드였고, 석준 리차드를 처음 만났을 때 놀라움이 있었다. 그러나 석준이가 하나하나 자신의 리차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며 기존에 머릿속에 있는 리차드라는 틀을 깨게 되었고, ‘저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번 시즌부터 함께 했지만, 서로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던 우석이는 ‘역시나' 와 '오~ 세상에’를 느끼며 단단하면서도 색다른 시선이 넓게 펼쳐졌다.

주순이는 더이상의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은 화룡점정이다. (웃음)

이렇듯 다양한 색을 가진 배우들이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 저도 바닷가의 길처럼 가보자 다짐했다. 물을 거슬러 강으로 가지 않고 결국 바다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또 결국 어떻게 흘러도 바다로 가게 된다는 믿음은 또 윤이가 함께 했기에 끝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배나라-김현진 ©열린뉴스통신
배나라-김현진 ©ONA

Q. 현진 씨가 다른 배우들에 대한 코멘트를 해줬는데 나라 씨도 해준다면.

나라 – 제가 짱입니다. (웃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보니 똑같은 캐릭터를 연기해도 결이 너무 다르다. 화를 내도 누구는 3, 누구는 5를 내지 않나. 석준이는 9살 차이의 동생인데 이 친구랑 이야기하면서 ‘이게 이렇게 흘러가도 될까’ 싶으면서 말이 되고 결과적으로 목표점을 찍어놔서 거기로 가면 되는데 제가 리차드를 너무 색칠까지 하지 않았나 깨달았다. 스케치를 해두고 이것도 칠하고 저것도 칠하면서 시도해 봐도 되는데, 리차드의 색을 정해놓고 보려고 하지 않았나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기본적으로 틀을 도와줬던 배우는 지난 시즌을 해본 윤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한 리차드는 이런 거야’로 재해석이 되고 정리가 됐다. 상대적으로 네이슨들은 다른 느낌, 다른 색깔, 다른 에너지로 연기를 하니 거기에 맞춰서 주고받는 힘이 다르니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가지고 있는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난 이렇게 할 거야’라는 고정관념이 스르륵 내려놔 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과정이며 흘러가는 건데 이걸 1, 2, 3으로 굳이 연기를 해야 하나? 내가 3, 2, 1이나 2, 3, 1로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 정해진 틀 안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여러 재미를 줄 수 있고, 재미를 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진 - 저번 시즌의 ‘쓰릴 미’가 재즈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클래식이라면 이번 공연은 클래식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재즈 같다. 지난번엔 정해진 걸 지켜가며 연기했는데 결과가 재즈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무대 위에서 하는 연기는 즉흥성도 강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재즈처럼 영향을 주지만 결국 이것들을 큰 틀로 봤을 때 한 가지로 합쳐진 거 같다. 저에게는 너무 좋은 공부였다.

[다음은 인터뷰③에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열린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