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선 칼럼니스트.
곽병선 칼럼니스트.

훌륭한 인재들을 모아, 그들이 서로 신뢰하고 존경하는 마음가짐으로 함께 팀을 이루어 전력을 다하고, 그 결과 뛰어난 성과를 창출하는 선순환구조를 정착시키려는 것은 조직을 통솔하는 모든 책임자들의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뛰어난 인재를 선별하기 위한 기준을 각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게다가 경쟁사회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이 협업하여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결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사항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할 뿐,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대학입시에서 취업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을 가르는 것은 합격과 불합격, 취업과 실업이라는 두가지 기준이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반면 이른바 일류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그들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에 취업한 젊은이와 취업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젊은이를 액면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뛰어난 인재를 선별하는 기준이 출신대학, 학업성적, 그리고 조직이 요구하는 스킬을 갖추었는가로 판단한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유분방하지만 독선적이며, 은둔형에 가까운 외톨이적 성향을 가진 청년이 있다. 그는 한때 마약을 한 적이 있고, 그리 알려지지 않은 대학의 철학과에 입학하지만 한 학기만 다니고 중퇴했다. 자신의 부모가 저축한 돈을 학비로 쓸 만큼 자신의 대학 생활이 가치있다고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라면 이런 사람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혀 사회에서 격리당할 수도 있다. 그는 분명히 최상위에 속하는 인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극소수의 인물만이 할 수 있는 대단한 업적을 이룬다. 그는 세상을 바꾼 인물로 성장하는데, 바로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잡스이다.

미국의 메이저리그에는 ‘돈으로 우승을 살 수는 없다.‘는 격언이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악의 제국’으로 불리는 뉴욕 양키스를 지칭하는 말이다. 내셔널리그에 속한 LA 다저스와 함께 어메리칸리그에 속한 뉴욕 양키스는 매년 사치세를 내면서까지 스타플레이어들을 지속적으로 영입한다. 그럼에도 양키스는 지난 2009년 이후 13년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하고 있다. 양키즈 팬들에게는 구단이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는 것이 굿뉴스지만, 양키즈를 상대하는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유쾌하지 않은 뉴스다. 양키즈나 다저스처럼 빅마켓에 속한 구단과는 달리 비교적 마켓규모가 작은 도시에 속한 구단은 자금력에서 열세이기 때문에 선수 영입에 있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1991년 아틀란타 브레이브즈와 미네소타 트윈즈의 경기는 스포츠가 관객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을 주었다. 1990년에는 지구 최하위였던 두 팀이 이듬해인 1991년에는 극적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다. 치열한 접전으로 시리즈는 7차전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양팀은 9회까지 0:0으로 점수를 내지 못해 연장전으로 돌입하게 되는데 결국 10이닝을 역투한 잭 모리스의 수훈으로 트윈즈가 우승했다. 이처럼 꼴지팀도 열심히 노력하면 우승할 수 있는 것이 스포츠 뿐만 아니라 모든 경쟁 시장에서의 틀이 되어야만 한다.

경쟁 사회에서 공정하게 게임 룰이 지켜지는 한 승자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열심히 노력하고 집중하여 전력을 기울인 선수가 승리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기업이 시간과 자금을 들여 개발한 제품이 소비자의 기호에 맞다면 응당 소비자는 그 제품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승자가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훨씬 더 많은 수의 패자가 있다. 특히 승자 독식의 경쟁 시장에서 패자에게는 설 틈이 별기 때문에 기업은 생존과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인재를 구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넷플릭스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넷플릭스에서 최고인사담당책임자로 재직했던 패티 맥코드는 당시 구조조정하면서 회사 직원의 30% 이상을 해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후 회사가 극적으로 재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해고했던 직원들은 실상 회사가 기대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자신의 저서 ‘파워풀’에서 술회했다. 적당히 일을 처리하고 넘어가려는 사람, 즉흥적으로 일하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 때에는 감정적으로 방어하고, 실수는 가급적 숨기는 사람들이 그가 지적하는 직원들의 업무태도였다.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을 그려낸 밀리언셀러 '노동의 배신'을 쓴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기업이 창의적인 인재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쾌활하고 복종하는 태도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외모에서는 기업에 순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올바른 옷차림과 액서서리를, 인상은 같이 일하기 편하겠다는 느낌을 줘야 취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그녀는 기업에서 채택하고 있는 인성 검사인 WEPSS와 MBTI 등이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희박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게다가 그 결과가 기업에 적합한 인성을 강조해 직원들을 길들이고, 맞지 않는 사람은 거절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결국 실직과 정리 해고는 사회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고, 불평등은 정당화되고 있었다.

개인은 노력과 성취를 믿는다. 기업은 각 개인을 그들에 맞는 용도로 사용하고 활용가치가 없을 때는 버린다. 유능하고 주도적이고, 충성적이라면 오래 버틸 수 있을거란 믿음으로 만사를 올바로 해 온 중산층은 기업의 노예가 되거나, 워킹 푸어로 전락해 그 자리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성과 중심으로만 사고하며 그 기준으로 직원들을 평가한다. 적당히 처리하고 넘어가려는 직원들을 대하면 속이 편치 않다. 패티 맥코드가 언급하듯 그런 사람들로부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해고한 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근무하는 동안 크고 유명한 회사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팀에 속한 상위 1%의 틈에 끼지 못한다는 생각은 박탈감과 무력감 그리고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등장한 이론으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제도적 장치들이 오히려 범죄를 유발한다는 낙인효과가 있다. 사회적 규범에서 볼 때 어떤 특정인의 행위가 규범에서 벗어날 경우, 구성원들이 단지 도덕적인 이유만으로 나쁜 행위라고 규정하고 당사자를 일탈자로 낙인 찍으면 그 사람은 결국 범죄자가 되고 만다. 당사자의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거나 반도덕적 행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그렇게 규정함으로써 범죄자라고 내모는 것이다. 시장의 신뢰를 잃은 기업의 경우 추후 어떤 발표를 해도 소비자들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용자가 직원 채용 시 다른 조건이 같으면 미취업 경험만으로 구직자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뽑지 않거나 구직자 스스로 미취업 경험 때문에 소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정형화된 존재가 아니다. 내면적으로 복합성과 다양성을 갖고 늘 갈등하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자신과 호흡이 맞는 동료들과 팀을 꾸려 일하고 싶을지라도 이제는 관심의 대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상위 1%에게 집중했던 시선을 이제는 최고의 팀으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된 99%에게 향해야 한다. 오늘은 선택받지 못했지만, 노력과 의지로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모른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회에서 태어났다. 남들과 다르게 불운한 가정적 배경을 가지고 자랐고, 까다로운 성격으로 인해 ‘마이너리티’로 머물러 사회적 문제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배경을 벗어나고자 하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실천이 있었고, 그의 창조적 아이디어에서 기반한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도전자 친화적인 사회적 환경’이 그의 성공가도에 있었다.

노던아이오와대에서 만년 후보선수를 못 벗어나던 커트 워너는 슈퍼마켓 종업원을 전전하다 2부리그인 아이오와 반스토머스와 NFL 유럽리그인 암스테르담 애드머럴스를 떠돌던 겨우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갔다. 백업 쿼터백이 필요했던 세인트루이스 램에 1998년 입단했지만 그가 주전으로 도약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전 쿼터백이던 트랜트 그린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그에게 기회가 왔다. 1999년 시즌에 맹활약을 펼쳐 NFL 통산 최고인 4353야드 패싱기록을 세우면서 팀을 단번에 슈퍼볼 정상으로 이끌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워너는 “나는 최하층에 있으면서도 결코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 결실을 이제야 맺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직이나 개인은 각각 가치를 보유해야 한다. 인정받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소유한 가치가 조직의 가치와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 두 개가 완벽하게 동일할 필요는 없지만, 그 두 가치는 공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까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은 좌절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좋은 성과를 산출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개인이 인생에 걸쳐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직장에서 중요한 가치가 일치되지 못한다면 그 개인은 좌절하게 되고 그런 개인이 업무적인 성과가 뛰어날 수 없다.

지적으로 똑똑한 것으로 평가 받는 사람이 조직 내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조직에 필요한 인재는 어느 한 가지 차원에서 역량이 월등하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역량을 내부에서 효과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고, 조직이 요구하는 가치와 나 개인의 가치를 일치시킴으로써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열린뉴스통신) 곽병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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