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선 칼럼니스트.
곽병선 칼럼니스트.

신뢰를 뜻하는 Trust의 어원은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Trost이다. 신뢰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누구나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 반대로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로 인해 배신, 거짓, 모략 등으로 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끊이지 않아 편해질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서 성장한다. 신뢰란 집단이나 사회를 유지하는 초석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신뢰가 없다면 분열과 재앙으로 파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자신이 남들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들을 신뢰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탈리아의 정치가인 카밀로 벤소 카보우르도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보다 신뢰하는 사람이 실수가 더 적다”고 말했다.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최악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려 애쓰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이 내게 해로운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다.

1824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줄타기 곡예사인 찰스 블론딘은 48미터 높이의 나이아가라폭포를 40파운드의 막대기로 균형을 잡은 채 건너는데 성공한다. 이어서 뒤로 걸어서 건너기, 안대를 하고 건너기, 자전거를 타고 건너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이아가라폭포를 왔다 갔다 했다. 곡예를 마칠 무렵 그가 모여 있는 수많은 관중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은 내가 사람을 등에 업고 이 폭포를 건널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러자 관중들은 ”우리는 당신이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가 관중들에게 “ 그럼 내 등에 업혀 이 폭포를 같이 건널 분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하고 말하자 어느 누구도 그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고 다들 고개를 돌렸다.

블론딘이 관중들 가운데 한 사람을 가르키며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그 관중은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답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 남자를 등에 업은 블론딘은 매우 신중하게 한 발씩 앞으로 내딛었다. 자칫 생사가 갈린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자신을 신뢰한 남자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꼭 보여주겠다는 굳은 결기가 그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마침내 블론딘은 그를 업고 나이아가라폭포를 건너는 데 성공했다.

관중들은 블론딘의 묘기를 직접 봤고, 그가 천부적인 줄타기 곡예사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어는 누구도 그의 등에 업혀 나이아가라를 건너려고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위험과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위험과 손실을 감수하지 않는 신뢰는 결코 신뢰가 아니다.

신뢰는 행동을 통해 얻어진다. 말로만 할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타인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렇듯하게 말을 하지만 행동하지 않으며,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지극히 이기적인 부류의 사람들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신뢰를 얻기 위해 거짓이나 감언으로 접근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배신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을 신뢰한 것에 대한 책임은 믿은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법정 스님은 아무나 인연을 맺지 말라고 했다. 믿음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기 때문이다.

신뢰의 바탕은 타인을 존경하는 자세와 존중하는 행동이다.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꺼내는 사람에게 존경하는 자세를 기대할 수 없다. 남을 단지 이용하려는 수단으로만 대하고, 이용할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는 냉정한 사람에게는 남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을 수 없다. 칸트는 "자신의 인격이건 타인의 인격에 대해서건 인간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할 것이며 한갓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폭염으로 물류창고의 직원들이 쓰러짐에도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보다 쓰러진 직원을 앰블런스에 실어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더 저렴하다고 판단하여 5일간 창고 밖에 앰블런스를 대기시켜 놓고 근무하게 한 경영자가 있다. 창고 내부는 46도까지 올라갔고 이를 견디지 못한 직원 15명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걸린 직원의 병가를 늘려주기 싫어서 다른 직원들의 병가를 기부하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창고 직원들에게 장갑이나 마스크, 손세정제 등 방역 물품도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해고하는 등 회사 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토네이도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물류 창고 직원들에게 근무를 강요했다가 창고가 붕괴되어 직원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한 아마존닷컴의 최고경영자인 제프 베조스의 이야기다.

베조스가 고집하는 경영 전략 키워드는 '고객 집착'이다. 무엇보다 고객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전략이다. 그는 단기적인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성장성에 집중하며 적극적인 투자를 이끌어 냈다. 1994년 서점으로 온라인 소매업에 뛰어든 베조스는 앱과 게임 등 디지털 콘텐츠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아마존닷컴은 세계 최초 드론 배송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 에어', 세계 최초 무인 매장 '아마존고' 등 매번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룬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경영자로서 도덕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점차 증폭되고 있다.

2018년 글로벌 비즈니스 플렛폼인 링크트인의 조사 결과 ’세계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아마존 닷컴이 뽑혔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에 아마존닷컴의 이미지는 완전히 변했다. 아마존닷컴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알려지면서 가장 이직율이 높은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아마존닷컴의 연간 이직율은 150%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 내 물류 및 유통업계 평균의 2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이는 비단 물류 창고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 국한되지 않고 점차 기술직이나 사무직 직원들까지 번지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요소로 ’혹독한 업무 문화‘가 지목되고 있는 까닭이다.

경영진이 직원들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아마존닷컴에서 보듯이 유능한 직원들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가 아무리 혁신적이고 유망하더라도 함께 일하기 싫은 경영진이 있다면 이직을 고려하는 반면, 근무 조건이나 회사 여건이 좋지 않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경영진이 있는 회사라면 기꺼이 근무하고 싶어한다. 경영진에 대한 신뢰는 기업의 지향해야 할 가장 상위의 가치라는 것을 모두가 공유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이 고통 당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게 되는 것을 칸트는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는 도덕적인 욕구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양심이라고 정의했다.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에 대해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아마존닷컴의 최고경영자의 의식에는 성과지상주의만이 작동하고 있다. 그에게 양심이란 사치였다. 그러나 비자발적인 추종에 의한 경영은 불필요한 감시비용과 생산성 저하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몽골과 남송의 44년에 걸친 전쟁에서 ‘가사도’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누이가 이종의 후궁으로 들어가 가귀비가 되면서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쿠빌라이의 군대와 맞붙은 악주 방어전에서 초기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내지만 점차 전세가 불리해지자 쿠빌라이에게 공물을 바치겠다는 밀약을 하고 전투를 끝낸다. 후퇴하는 쿠빌라이의 배후를 공격하는 시늉을 내고는 장강 일대의 몽골군을 격퇴했다고 보고했는데, 이 말을 믿은 이종은 그의 공을 칭송하며 우승상으로 임명했다.

1264년 이종이 죽고 뒤이어 즉위한 도종은 이종보다 더 무능한 인물이라 가사도는 본격적으로 국정을 전횡했다. 문천상과 같은 정적이 될만한 인물을 배척하는 한편 애첩들과 함께 귀뚜라미 싸움을 붙이며 놀기 좋아하는 등 여러 놀이를 즐겼다.

이후 몽골이 재차 쳐들어왔음에도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장수에게는 군대를 보내지 않았고, 양양 함락 후 게다가 악주까지 함락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거기다가 장강 일대를 지키던 무장들 대다수가 원에 투항하는 등 악재가 발생했다. 이에 송나라 조정은 가사도에게 출정을 압박하자, 그는 13만 군대를 이끌며 출전한다. 이 때 몽골의 바얀에게 화의를 요청하였으나, 오히려 거절당하고 몽골군과 맞서게 된다. 그리고 정가주 전투에서 가사도는 대참패한다. 엄청난 병력 손실로 인해 남송의 최후가 사실상 결정된 순간이었다.

결국 패전 뒤 강제로 조정에 소환된 다음, 승상 진의중이 탄핵을 주장하고 많은 대신들이 찬성을 하여 공종은 진의중의 탄핵결재를 받아들였다. 가사도는 파직되어 유배길에 오르던 도중 장주 목회암에 이르렀을 때 회계 현위 정호신에게 독살당했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형과 왕위를 두고 치열하게 다툴 때 그를 암살하려고 화살을 쏜 사람이 관중이었다. 왕권을 잡은 환공은 자기를 죽이려 했던 그를 내치지 않고 오히려 재능을 높이 사 승상으로 추대했다.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강대국으로 발전시키는 초석을 놓았다. 관중에 대해 쓴 책인 관자(管子)의 형세해(形勢解)에 “바다는 크고 작은 물, 깨끗한 물, 더러운 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능히 넓게 될 수 있고, 산은 크고 작은 돌이나 흙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능히 높게 될 수 있으며, 현명한 군주는 신하와 백성을 귀찮게 여기지 않아 능히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때 쿠빌라이가 비록 적이지만 칭찬했던 인물이었던 가사도가 몰락한 이유는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고, 자신의 반대편에 서는 사람들을 배척했던 탓이다. 신뢰의 근간은 포용이다. 포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신뢰를 기대할 수 없다. 가사도는 포용하지 못

(=열린뉴스통신) 곽병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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