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순, 최재웅©엠피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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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다음은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Q. 조가 퍼씨를 스핏파이어 그릴로 안내해주는데 이방인이었던 퍼씨의 첫인상은 어땠나.

재웅 - 조는 밤늦게 추운 곳에 일과를 하러 나왔기 때문에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과 짜증 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퍼씨의 전과 정보를 미리 알고 만났기 때문에 처음에 색안경을 낀 채 보게 된다. 생각보다 순하게 생겨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좀 의외라는 생각도 하지만 조는 그저 얼른 일을 처리하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다.

주순 - 퍼씨를 처음 만났을 때 조는 깊은 관심을 가질만한 상황이 아니다. 조는 기본적으로 게으르고 일을 하기 싫어한다. 밤늦게 업무를 더 하는 상황이 퍼씨 때문이니까 좋게 보이지 않고, 전과 사실도 파일로 다 봤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에 나와 동년배의 여자가 길리앗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확 다가왔을 것 같다. 그래서 위아래로 훑어보게 되고, 살인했다고 하기에 어려 보이고, 왜 살인을 했는지 궁금하면서 경계도 한다. 굉장히 투덜거리면서도 관심은 가고 참 바쁘다. (웃음)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처음 보면 외모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처럼 조의 입장에서는 많이 관찰하려고 한다.

최재웅©엠피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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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극에서는 조가 퍼씨와 붙는 장면이 많이 있지 않지만, 점점 마음이 가지 않나. 어떤 점에서 마음이 끌린 것 같나.

재웅 - 퍼씨가 마을사람들과 시간이 가면서 어울리게 된다. 조는 퍼씨에게 처음에 쌀쌀맞게 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퍼씨에 대한 마음이 열리고 마을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뀐다. 숲에 대해서 안 좋게 봐왔던 조에게 퍼씨가 자기는 숲에 살겠다고 말하면서 숲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때 숲의 아름다움을 다시 알게 돼서 퍼씨에 대한 마음이 커지게 된다. 또 마을 사람들에게 지지 않고 상대하는 퍼씨를 보면서 마을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당돌한 여성의 모습이 훅 다가왔을 거고, 요리를 너무 못하지만 어떻게든 해내려는 모습도 예뻐 보인다. 무엇보다 퍼씨로 인해 숲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 것들에 대한 고마움이 점점 커져서 호감의 감정으로 발전해나간다.

주순 - 대본과 작품에서 조와 퍼씨가 함께하는 그림이 많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다. 왜 조는 퍼씨에게 마음이 가고 결혼하자고 말할까 고민했다. 장면을 진행해보고 그림으로 만들어보니 생각보다 조가 퍼씨를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이 많고, 장면 사이에도 며칠, 몇 주, 몇 달씩 흐르는 사이에 조는 늘 퍼씨를 봤을 것 같다. 가석방 보호관찰도 일주일에 한두 번, 한 달에 열 번 가까이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조는 퍼씨와 계속 이야기를 나눴을 거다. 조가 아침을 먹으러 스핏파이어 그릴에 가면 퍼씨의 일하는 모습도 보지 않나. ‘프라이팬’ 넘버에서 허둥지둥하면서도 못하는 요리를 해내는 퍼씨의 모습도 젊음이다. 위기에 닥쳤지만 내가 요리했으니까 그냥 먹으라고 하는 게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케일럽은 ‘쟤 뭐야’라고 하지만 조는 퍼씨를 재미있어할 것 같다. 이런 거리감이 좁아지다 멀어지다 하다가도 둘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보안관과 범죄자라는 벽이 있다. 이때 제가 앞서 '드넓은 숲'신이 조에게 중요한 장면이라고 한 것으로 여기서 처음으로 조와 퍼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퍼씨가 길리앗에서 제3자라는 인물이라는 게 중요하다. 이 마을에 쭉 살아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제3자로 툭 던질 수 있는 이야기를 퍼씨가 숲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한다. 조가 어릴 때 개울물을 떠 마시고, 단풍나무 잎에 앉아서 놀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퍼씨가 말할 때 다시 보게 된다. 조는 자신의 추억인 숲의 나무를 베어버려서 마음이 뜬 건데, 퍼씨라는 인물이 아무렇지 않게 숲의 이야기를 하니 숲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이때 어린 한 소녀로 보인다. 그리고 나는 한 소년처럼 느껴진다. ‘뭐야, 나 왜 이래?’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원래 누구에게 호감이 생길 때도 ‘예쁘다! 잘생겼다!’를 느낄 때가 아니라 ‘얘 뭐지?’라는 생각이 들 때이지 않나.(웃음) 둘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스스로 즐겁고 웃음이 나면서 둘만의 시간이 조금씩 생겼을 것 같다. 하지만 조는 퍼씨보다 마음이 조금 더 간다. 저는 조라는 인물에게 컨트리한 걸 많이 묻히려고 했다. 로맨스라고는 없다. 저희 아버지도 엄청 시골 사람이라 다정한 게 없으셨는데, 조도 그랬을 것 같다. 조는 결혼하면 행복하게 살면서 퍼씨와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등등 그런 로맨스가 아니라 그냥 같이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퍼씨에 대한 마음도 로맨틱하게 깊은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퍼씨가 고백을 거절했을 때 느껴지는 충격도 있을 것이고, 그 자리를 나가고 나서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 조랑 퍼씨가 다시 만났을 때는 조가 조금은 성숙해졌을 것 같고, 퍼씨가 우린 친구라고 할 때 뿌듯함을 느끼면서 이렇게 천천히 지내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둘의 뒷일은 어떻게 됐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재웅 - 저는 주순이 형과 다르게 고백할 때 치밀하게 준비했다. 조의 마음은 결혼 직전까지 가 있으니까 아빠한테 땅을 달라고 해서 받아보고 땅문서를 리본으로 묶으면서 퍼씨도 당연히 날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퍼씨가 고백을 거절하자 퍼씨의 표정을 보면서 조는 많이 꺾인다. 왜 이렇게 말하는지 걱정스러움도 있고, 애를 못 낳는다고 할 때도 당연한 것들을 슬프게 이야기해서 일단 ‘알았다’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달라’고 말한다. 나중에 셸비에게 퍼씨가 이런 슬픔이 있다는 걸 듣고 알게 되고는 기다리고 있을 것 같고, 나중에는 둘이 같이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순, 유주혜©엠피엔컴퍼니
아주순, 유주혜©엠피엔컴퍼니

Q. 조가 바라보는 숲은 어떤 모습일까.

주순 - 숲은 변화무쌍하다. 개인적으로 등산을 좋아한다. 제가 조라는 인물을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 등산을 했을 때는 마냥 좋았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고 듣고, 어느 계절에 가느냐에 따라 산의 모습도 많이 다르다. 맑은 날에 가면 나뭇잎 하나까지 또렷하고, 구름이 낀 날에는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아름답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밖은 뿌옇지만 산 안에는 뚜렷하다. 그러다가 조의 시선으로 숲에 갔을 때는 마음가짐이 다르게 되고 마냥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없더라. 제가 조를 그리면서 등산을 한 이유는 제가 가지고 있는 숲에 대한 마음을 눈에 더 담고 싶었고, 무대에 서있을 때 제 눈에서 숲의 색깔을 느끼고 호흡에서 피톤치드를 느꼈으면 했다. 그런데 산에 올라가 보니 사람의 편리성을 위해서 나무를 베어 버린 게 눈에 들어왔다. 나무가 베인 자리에 조그만 나무가 크는 걸 보면 이 나무가 언제 커서 숲의 일원이 될까도 싶다. 동네 사람들의 작물 키우기 동호회를 위해서 산의 반을 벤 것도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미 생활을 위해서 베었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길리앗의 숲도 벌목꾼들이 돈을 위해서 베었을 테니 조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재웅 - 저도 제 경험을 통해서 보려고 하는 편인데 외갓집도 시골에 있다. 거기에 소나무와 냇물이 예쁘게 있었는데 어느 순간 다 없어졌다. 어릴 때 나무들 주변에서 놀고 냇물이 얼면 눈썰매도 타고 놀았는데 언젠가 다 밀어져있고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뒀더라. 예뻤던 곳이 이렇게 변해서 아쉬운 마음도 크고 길리앗의 마을처럼 느껴졌다. 그때 여기에 대한 미련이 없으니까 떠나서 서울에 가고 싶어 했던 마음이 조와 비슷했다.

최재웅©엠피엔컴퍼니
최재웅©엠피엔컴퍼니

Q. 그럼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숲의 모습은 있나.

주순 - 최고는 금강산이었다. 어릴 때 아람단이었다. 엄마와 누나, 동생이랑 금강산에 같이 갔는데 금강산이 비가 올 때 올라가면 그렇게 예쁘다고 들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가 올라가는 날에 비가 어마어마하게 내렸다. 그리고 왜 비가 오는 금강산이 예쁘다는지 알게 됐다. 골짜기에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등산하면서 들리는 물소리가 엄청 좋았다. 그때 당시 단풍이 펴서 산이 완전 금색이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열심히 찍었는데 실수로 뚜껑을 열어 빛이 들어가서 사진을 인화하지는 못하고 엄마한테 한소리만 들었다. (웃음)

재웅 - 충북 괴산의 나무들로 외할머니가 진천에 사셔서 가는 길마다 산에 단풍에 예쁘게 들었다. 그때마다 엄마께서 ‘아들아, 참 그림 같지 않니’라고 말씀하셔서 보면 정말 예뻤다. 그땐 예쁜지 잘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지금도 보러 가고 싶다.

이주순©엠피엔컴퍼니
이주순©엠피엔컴퍼니

Q. 퍼씨가 길리앗의 단풍사진을 보고 마을을 찾아오듯, 사진을 보고 이곳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장소가 있다면.

주순 - 엄청 많다. 저는 늘 자연으로 여행을 꿈꾸지만 현실적으로 매일 여행을 다니고 있을 수 없지 않나.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다. TV 영상으로나마 세계 곳곳의 자연경관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북유럽 여행도 가보고 싶고, 미국, 북극, 남극, 몽골, 알프스 등 거대한 자연 앞에 너무도 작은 저를 깨달았을 때 오히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재웅 - 제 버킷리스트에 한라산 등산이 있다. 겨울에 제주도를 가서 백록담도 보고 동백꽃도 함께 보고 싶다.

Q.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나 넘버는.

주순 - 제 노래 중에 '당신이 내 눈을 밝혀줬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조가 아닌 이주순이 팬분들께 꼭 전해드리고 싶은 말이라 프로그램북에도 적었다. 늘 감사합니다. 넘버가 다 좋아서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자주 바뀐다. 연습 초반에는 강한 비트와 함께 시작되는 케일럽의 솔로 넘버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자주자주 바뀌다가 지금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천국의 빛깔’이 차지하고 있다.

재웅 - ‘다시 살아나’를 좋아한다. 마을 사람들이 스핏파이어 그릴에 같이 모여서 편지를 읽으며 변하는 과정이 있다. 그때가 너무 행복하다. 이 행복감으로 다음 고백신으로 넘어가서 기분이 제일 좋다.

최재웅©엠피엔컴퍼니
최재웅©엠피엔컴퍼니

Q. 2021년의 마지막과 2022년의 시작을 ‘스핏파이어 그릴’로 따뜻하게 맞이했는데 감회는 어떤가. 2022년의 계획은 무엇인가.

주순 - 2021년 12월 31일, 2022년 1월 1일 모두 공연이 있었다. 이보다 더 의미 있는 마무리와 활기찬 시작이 있을까. 나이 한 살 더 먹은 이야기는 하면 안 된다. 분장실에서 ‘저 이제 서른하나예요’라고 했더니 보영선배님께서 ‘주순아?’이러시더라. (웃음) 한 해가 마무리되고 또 다른 한 해가 시작될 때뿐만 아니라 언제나 늘 저는 저와 주변사람 모두가 건강하고 무사 무탈하기를 바란다. 사실 이게 저의 치밀한 계획이다. 계속 말씀드려서 건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다. 건강이 최고다. 2022년도 수니 파이팅!

재웅 - 2021년 마지막과 2022년 시작에 따뜻한 에너지를 받았다. 작년에 한 ‘쓰릴 미’는 마음을 써야 하는 작품이었고, ‘멸화군’도 소리 지르는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정말로 따뜻한 극을 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시작과 끝을 이렇게 하게 돼서 감사한 것 같다. 뮤지컬을 하는 게 행복하다고 느낀다. 올해 계획은 연기를 좀 더 잘해보고 싶다. 트레이닝을 더 받고 집중해서 잘 해내고 싶다. 노래에 신경을 썼을 때는 겉은 채우려고 했는데 연기를 잘하려면 내면이 차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여태 빈껍데기만 나온 것 같아 연기를 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계획이다.

한편,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은 유주혜, 이예은, 나하나, 임선애, 유보영, 방진의, 정명은, 이주순, 최재웅, 최수형, 임강성, 이일진, 민채원, 허채윤, 성우진이 무대에 오르며, 2월 27일까지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1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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