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준.(제공=㈜엠피엔컴퍼니)
이봉준.(제공=㈜엠피엔컴퍼니)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다음은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Q. 모리츠가 멜키어의 엄마에게 도움의 편지를 청했을 때도, 멜키어가 아니라 그의 엄마여서 놀랐다. 멜키어의 엄마를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봉준 –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어른들은 어린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억압하고 가둬두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모리츠가 멜키어에게 찾아갈 때 잠시 나오는 그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우선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뭐지?’ 싶을 것 같다. 모리츠가 인생에서 겪은 어른들과 정반대의 모습이고, 따뜻함이 느껴졌을 것이다. 멜키어가 가장 친하고 그에게 많이 물어봤겠지만, 현실적으로 천 달러를 달라고 하기 어려우니까 멜키어의 어머니에게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Q. 벤들라가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다며 멜키어에게 자신을 때려 달라고 한다.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이내 이성을 잃고 벤들라를 때리던데 이때 멜키어의 마음은 어떤가.

휘 – 멜키어는 학교에서 폭력적인 억압을 당했기 때문에 벤들라가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니 계속 밀어낸다. 그런데 벤들라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고 애원을 하니까 벤들라를 살짝 때려서 넘기려고 하지만 치마 때문에 아무 느낌이 없다고 치마를 올려버린다. 이때 멜키어는 여자의 다리 속살을 처음 보니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벤들라는 계속 때려 달라며 자극을 하고 멜키어는 당황스러움과 화남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는 충동 속에서 이성을 잃고 때린다고 생각한다.

(제공=㈜엠피엔컴퍼니)
(제공=㈜엠피엔컴퍼니)

Q. 멜키어의 다이어리에는 무엇이 쓰여 있었을 것 같나. 휘 배우는 일기를 쓰는 편인지, 쓴다면 최근에 쓴 일기 중에 기억나는 부분이나 안 쓴다면 어렸을 적 일기를 잘 쓰는 편이었나.

휘 - 멜키어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데에서 오는 감정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썼다고 생각한다. 또 본인이 학교에서나 집에서 직접적으로 느꼈던 일 혹은, 모리츠나 친구와의 얘기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일들로 주제를 정하고 본인이 책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해 갔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올바른 진리와 이상적이고 진보적인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과 벤들라와 숲속에서 만나고 난 뒤부터는 처음 직접 느껴본 이성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과 생각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잘 적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꾸밈없이 적어놓는 일기장이라 소중하지만 공개되어선 안 되는 비밀 일기장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일기를 쓰지 않는 편이다. 일기라고 하면 하루를 시작하고 끝마치는 부분이 뭔가 확실하고 어떤 일들이나 사건이 일어나서 거창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삶의 패턴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하루하루를 써 내려가는 게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 쓰게 됐던 것 같다. 감사일기를 써본 적도 있는데 매일 쓰다 보니 과제처럼 느껴지더라. 그런데 요즘은 이런 기록들이 하루를 돌아보게 하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렸을 적 일기는 방학 숙제 끝내기용 벼락치기였다.(웃음)

Q. 모리츠가 일세를 마주쳤을 때 어쩌면 그가 일세에게 그의 고민을 털어놨으면 죽음까지는 안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는데, 모리츠로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봉준 – 일세를 마주칠 때 ‘나를 살 수 있게 해줄까? 나에게 좋은 말을 해줄까?’ 싶지만 이미 모리츠는 극단적으로 가 있기 때문에 일세가 하는 말을 들어도 결국 안 좋은 환경으로 되돌아갈 것 같다. 수많은 감정이 공존하지만, 모리츠는 ‘힘든 환경이 날 억압할 거야’라는 생각에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제공=㈜엠피엔컴퍼니)
(제공=㈜엠피엔컴퍼니)

Q. 어린 소녀들이 “멜키어는 벤들라를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이 굉장히 순수한 궁금증이면서도 공연을 본 사람으로서도 궁금하더라. 멜키어는 벤들라를 언제부터 좋아했을까?

휘 - 연출님께서 1막 마지막 ‘I believe’에서 두 사람이 관계를 갖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랑이 아닐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때는 충동적인 첫 경험이니까 같이 있으니 손을 잡고 싶고 입을 맞추고 싶은 마음인데, 저는 결국 사랑이 없으면 벤들라가 죽었을 때 무너질 수 없으니 사랑하는 시점이 궁금했다. 2막에 모리츠가 죽은 후에 학교에 갔더니 추모하는 분위기는 없고 청소년 자살 문제를 묻으려는 선생님들을 보고, 모리츠가 죽은 것은 멜키어 탓이라고 퇴학을 당한다. 집에서 엄마만큼은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엄마마저도 멜키어를 소년원으로 보내니 혼자 남겨지는데 이때 가장 생각나는 게 벤들라다. 5장에서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말이 통하는 친구가 벤들라이며 그녀와의 경험이 좋았고 함께 사회를 벗어나서 살아야겠다고 느낀 유일한 희망이자 사랑일 거라고 생각한다.

Q.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는 무엇인가.

봉준 – 공연을 할 때마다 바뀌는 것 같다. 최근에는 모리츠 부분을 빼면 멜키어가 “사랑? 그런 게 있어? 난 모르겠어. 네 심장 소리가 들리는데, 네 숨소리가 들리는데, 모든 곳에서” 이 대사를 듣는데 멜키어도 아는 척을 하고 다 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1막 마지막 장면에서 멜키어가 그동안 쌓아온 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느꼈다.

휘 - ‘All That's Known’과 ‘Those You've Known’에 나오는 대사로 “나를 봐, 지켜봐, 당신도 날 알게 될 거야, 다 알게 될 거야”라고 같은 가사 말이지만 다른 상태이다. ‘지켜봐, 내가 다 해낼 거야’라는 강력한 의지로 던지지만 이내 무너지면서 ‘The Song of Purple Summer’가 시작된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거라고 말하지만 어린 친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며 무너지게 된다. 이때 제 뒤에 모든 배역의 친구들이 있지만 모두가 실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멜키어가 “세상에, 작은 무덤들 좀 봐”라고 말할 때 또 다른 모리츠처럼 젊은 청년들이 묻혀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억울한 죽음으로 영혼이 되었다고 생각해서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연결되는 부분부터 더 와 닿게 되고 멜키어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다.

(제공=㈜엠피엔컴퍼니)
(제공=㈜엠피엔컴퍼니)

Q.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본인의 캐릭터를 제외하고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휘 – 워낙 캐릭터별로 개성 있고 스토리가 있어서 한 번씩은 다 해보고 싶다. 제가 ‘이 캐릭터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하면 벌써 재미있다. 저는 일세를 해보고 싶다. 극의 시작을 열고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먼저 큰 아픔을 겪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는 인물로서 극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이지 않나. 다른 아이들한테는 보이지 않지만 그만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와 에너지가 있어서 신비롭고 그것을 표현해보고 싶다.

봉준 – 저는 마르타! 모리츠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인물의 시선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마르타의 대사를 좋아하고 마음이 간다. ‘My Junk’ 신에서 마르타가 “아마 그건 사랑! 정말 슬픈”이라는 대사를 좋아한다.

Q. 1891년 독일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공감해주기보다 권위적이고 억누르는 사람이지 않았나. 극을 보면서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는데 어떤 어른이 되고 싶나.

휘 – 이 이야기는 소통의 부재로부터 이해와 존중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다 보니, 스스로 ‘어른으로서’라고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존중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넌 어린아이니까 내가 맞아’가 아니라 ‘너의 생각은 그렇구나’라고 존중하며 제 생각을 주입하기보다 함께 나누고 싶다. 가끔 제가 애를 낳아서 키우면 어떻게 양육을 할까 종종 생각해보는데 “지지, 하지 마!”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나. 그러기보다는 아기들의 생각을 키워주고 ‘마음껏 해봐’라는 마음으로 대하고 싶다. 저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인드를 좋아하는데 누군가 실수했을 때도 그 사람이 그럴 의도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봉준 – 저는 이 작품을 하면서 위로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멜키어, 벤들라, 모리츠의 사건 중심이지만 모든 인물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때로는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이 큰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지 않나. 어떻게 하면 온전히 공감해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봤다. 저는 비슷한 경험을 말해줄 때 위로가 되는 것 같다.

황휘-이봉준.(제공=㈜엠피엔컴퍼니)
황휘-이봉준.(제공=㈜엠피엔컴퍼니)

Q. 10년 만에 돌아온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하고 있는데, 10년 뒤에 오늘을 본다면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나.

봉준 – 상상이 안 간다. 10년이고 20년이고 훗날 다시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순간일 것이다. 오디션부터 하면 올해 초부터 긴 시간 동안 이 작품에 몸담고 있는데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다 같이 고민하며 대화하고 헤쳐나간 순간들이 소중하다. 언제든 생각날 작품이다.

휘 – 지금 생각해보니 소름 돋는 게 10년 전에 고3으로 배우지망생으로 입시를 시작했는데 그때만큼 뜨거웠던 적이 없다. 10년 뒤에 지금의 저를 바라보면 배우로서 첫 시작이니까 이때만큼 뜨거운 작품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초심을 잡아줄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고 ‘그땐 그랬지’라며 귀엽고 소중한 시간이지 않을까.

Q. 각자 멜키어와 모리츠에게 한마디씩 한다면.

휘 – “앞으로 잘 살아갔으면 좋겠고, 너를 만나서 행복한데 내가 너를 잘 표현한 건지 미안한 부분이 있다.” 제가 봤을 때 멜키어는 용기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짊어지지 않았나, 그래서 멋진 어른이 됐을 것 같다.

봉준 – “잘 살았어.” 제가 모리츠가 비슷한 나이 또래였다면 느끼는 지점이 조금 달랐을 것 같은데 모리츠보다 나이가 많다 보니 아픔을 갖고 있거나 힘든 일을 겪은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 덧붙인다면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할게.”

[다음은 인터뷰③에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열린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