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선 칼럼니스트©열린뉴스통신
곽병선 칼럼니스트©ONA

미국에서 대도시 주변의 우범지역을 지나다 보면 빈집이나 문짝이 파손되고 창문이 깨져있는 집들을 볼 수 있다. 반면 교외의 안전지역에는 빈집이나 깨진 유리창을 거의 볼 수 없다. 깨진 유리창이론(Broken Window Theory)은 미국 범죄학에서 연구되어 발표된 이론으로, 건물 주인이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해 둔다면 절도나 건물파괴 등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1982년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과 범죄학자 조지 겔링(George L. Kelling)이 Atlantic Monthly에 게재한 논문 「Broken Window」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논문의 부제 「경찰과 지역의 안전: The Police and Neighborhood Safety」가 보여주듯이, 경찰과 지역공동체의 관계에 착안하여, 기존의 시각을 전환함으로서 범죄를 감소시키고 생활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소한 무질서를 계속 방치하다 보면 결국에는 사회전체로 무질서가 확대되어 범죄화되기 때문에 조그만 불법·무질서라도 방치하지 말고 철저히 단속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기초질서 단속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

거리에 차량상태가 비슷한 자동차 두 대를 세워 놓는다. 두 대 모두 본닛이 열린 상태이며 그 중 한 대는 창문을 깨어 부순 채로 관찰한다. 본닛만 열어놓은 차는 1주일이 지나도 그대로였지만, 창문까지 깨어놓은 차는 10분만에 타이어와 배터리가 없어졌으며 심한 낙서와 함께 파손되었다. 1969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필립 짐바르도(Philip G. Zimbardo) 교수가 실시한 실험으로 이를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 부른다. 깨진 유리창은 처음에는 매우 사소해 보이지만, 이를 가만히 둘 경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며,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다"라는 메지지를 전하게 된다.

뉴욕은 매우 위험한 도시로 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치안도 불안했지만 지금은 달라져 강력범죄가 사라지고 깨끗하고 활기찬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대형범죄를 소탕하고 도시를 활기차게 만든 것은 사소한 질서부터 잘 지키도록 경범죄를 엄격히 단속한 데서 시작되었다. 1994년 뉴욕시장으로 당선된 루돌프 줄리아니(Rudolf Giuliani)는 취임하자마자 뉴욕 지하철 내의 낙서를 모두 지울 것을 지시했다. 낙서를 지우면 또 생기고 이를 다시 지우는 반복적인 과정을 거쳐 수년이 지나자 지하철 내의 낙서가 없어졌는데 이와 더불어 뉴욕시의 범죄 발생율도 낮아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1년차에는 30-40%, 2년차에는 50%, 3년차에는 80% 정도로 범죄율이 감소했다. 뉴욕시가 시행한 이 정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결국 범죄율 감소 효과를 보임에 따라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이해하게 되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비즈니스 세계에 도입한 마이클 래빈은 자신의 책에서 경영전략이나 비전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기업을 갉아먹고 있는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것들에는 신경 쓰지 않는 기업 경영자들에게 작고 사소한 문제에 집중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고객이 한번 겪은 불쾌한 경험, 한 명의 불친절한 직원, 정리가 되지 않은 매장, 말뿐인 약속 등 기업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실수가 기업의 앞날을 좌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분야에서 깨진 유리창은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고객의 눈에는 잘 보이지만 오만으로 눈을 가린 기업의 임직원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했던 도시바의 몰락은, 2006년 최고 경영자의 오만에서 시작됐다. 니시다 대표는 M&A시장에 나온 미국의 핵발전소 건설업체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 인수전에 뛰어 들었다. 결국 입찰 금액은 54억 달러까지 뛰었고 많은 이사진들이 경고에도 불구하고 니시다 대표는 뜻을 꺾지 않았다. 핵발전 사업으로 제네럴 일렉트로닉 같은 거대 미국 기업을 따라잡고 20년 안에 시장에 되팔아 수익을 남길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2008년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로 2기 건설 계획은 공사가 지연되면서 비용이 초과됐고, 2011년 3월 일본 북동부에는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해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하는 블랙스완이 일어났다.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파산을 신고했고 도시바는 투자금액 1조 엔(약 11조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일본 기업사 최대 손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도시바가 도쿄주식거래소에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5천억 엔(약 5조 원)의 순자산을 소멸시켜야 했고다. 이 때문에 그룹 영업이익의 90%를 차지하는 반도체 생산시설을 매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했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도시바의 몰락으로 인해 하향세를 걷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시장을 확대하고 매출을 늘려가고 있었던 기업이 바로 삼성전자다. 니시다 대표의 오만한 의사결정이 도시바의 몰락과 일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무너뜨리는 트리거가 된 것이다.

둘째, 매우 사소한 것으로 판단, 별 문제 아니라고 방심하게 된다는 점이다. 1912년 4월 15일 ‘떠다니는 궁전’ 타이타닉(Titanic)호가 침몰했다. 승객과 승무원 2200여 명을 태우고 영국 사우스햄프턴에서 출항해 미국 뉴욕으로 항해하던 중 빙산에 부딪쳐 1500여 명이 숨진 이 사건은 ‘20세기의 비극’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타이타닉호는 이중바닥에 16개의 방수격실, 그리고 특정 수위가 되면 자동으로 닫히는 문 등 고도의 안전장치가 구비되어 있었기에 절대 가라앉지 않는 배, 일명 ‘불침선’이라고 자랑하던 배였다. 타이타닉호의 대 참사 원인에 대한 추정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7년 9월 타이타닉호의 사물함 열쇠가 경매에 나온 이후, 타이타닉호의 비극은 선원의 부주의와 방심, 그리고 오만이 빚어낸 인재(人災)였다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문제의 그 열쇠는 선박의 안전운항을 책임진 망루선원이 사용할 망원경이 들어 있던 사물함 열쇠였다. 당시 망루선원은 ‘데이비드 블래어’라는 사람이었는데 출항 직전에 갑자기 교체되는 바람에 깜박 잊고 후임자에게 사물함 열쇠를 전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후임 망루선원 ‘프레드릭 플리트’는 맨눈으로 앞을 살펴야 했다는 것이다. 천체나 기상의 상태, 추이, 변화 따위를 관찰해 안전운항을 유도해야 할 망루선원이 망원경도 휴대하지 않은 채 출항을 서둘렀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고는 그때 이미 잉태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침몰하기 전날 오전, 항로에 빙산이 떠돌고 있다는 경고 무전이 수차례 들어왔으나 타이타닉 선원은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11시경, 또다시 근처를 항해하던 화물선 ‘캘리포니안호’의 통신사 에반스가 빙산을 조심하라는 무전을 보냈으나 타이타닉호의 무선사 존 필립스는 승객들의 통발신 업무에 쫓긴 나머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벌컥 화를 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안을 당한 캘리포니안호의 무선사는 “에라 모르겠다” 무전기를 끄고 잠들어 버렸다고 한다. 결국 타이타닉호는 첫 항해에 나선 지 겨우 4일 17시간30분 만에 최후를 맞고 말았다. 안일한 생각과 사소한 방심, 그리고 과도한 경쟁이 참변을 불렀던 것이다.

셋째, 세심하지 못하고, 디테일에 약하다는 점이다. 톰피터스는 리더의 네 가지 역할로 최고가 되려는 신념, 디테일에 대한 집념, 창의성 응원, 실패에 대한 지원을 꼽는다. 그중 디테일에 대한 집념이 눈길을 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디테일에 강하다. 대충하고 얼렁뚱땅 지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이런 면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실상 사업의 승부는 비전이나 전략 같은 큰 어젠다보다는 디테일에서 결정 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회사나 비전과 전략은 큰 틀에서 보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고객만족이란 어느 회사든 가장 큰 가치를 둔 경영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연 고객들이 이를 체감하고 있느냐인데, 이는 디테일에서 승부가 난다. 수년전 유럽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China Air를 이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비행기가 북경에 연착하는 바람에 인천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을 놓쳐 6시간 이상을 대기해야만 했다. 항공사와 공항 관계자들에게 어찌된 것인지 승객들이 항의하자 그들은 별일 아닌데 소란 피운다고 오히려 역정을 내고 있었다. 방송으로 공지조차 하지 않고 무대응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북경대 부설 디테일경영연구소 왕중추 수석컨설턴트가 그의 저서 ‘디테일의 힘’에서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디테일에 약하다고 한 말을 수긍할 수 있었다. 중국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민담 중에 ‘差不多(원래는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의미인데 그럭저럭 대충이라는 의미로 흔히 쓰임)선생’이라는 말이 있다. 差不多 선생이 병이 나서 汪씨 성을 가진 의사를 찾아 가야 하는데, 이름이 비슷한 수의사 王 선생을 찾아 갔다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우스갯소리다. 그는 죽으면서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대충 비슷하잖아’하고 우겼다고 한다.

왕중추 수석컨설턴트는 중국에서는 큰 것만 중시하고 작은 것은 가볍게 여기는 문화가 오랫 동안 이어져 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 예로 중국의 역사를 보면 철학자, 사상가, 문학가, 예술가는 많았지만 위대한 수학자나 과학자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 반면 디테일에 강한 일본의 경우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8명, 생리의학상 5명 등 과학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24명이나 배출할 정도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삼성그룹의 고(故) 이병철 회장은 디테일에 관한 한 입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그가 공장을 방문할 때 세 가지를 봤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현장의 청결상태, 공장 앞 나무들의 건강상태, 기숙사의 정리정돈 여부로 공장의 생산성 등 직접적인 현안과는 언뜻 보기에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치열한 경쟁 시대에서는 웅대한 지략을 품은 전략가 보다는 작고 평범한 일도 꼼꼼하게 처리하는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고객을 위해서 평범하기를 거부하고 상상을 뛰어넘는 것을 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평상시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너무 작아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디테일을 다 챙길 수 없지만 내가 집중해야 할 고객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하여 진정성을 갖고 디테일을 추구한다면 고객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 장소에 종이뭉치가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그냥 지나쳤고, 그것을 본 사람들도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오직 한 지원자만이 바닥에서 휴지를 주워 휴지통에 버렸다. 그 버렸던 종이에는 ‘우리 회사에 입사한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세월이 지나 종이뭉치를 주웠던 그 사람은 이 회사의 CEO가 되었다.

저작권자 © 열린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