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  문화커뮤니케이터 ·  칼럼니스트©열린뉴스통신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 문화커뮤니케이터 · 칼럼니스트©ONA

[열린뉴스통신=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한국 영화역사 102년 만에 배우 윤여정이 제 93회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앞서 그는 미국배우조합상(SAG), 영국 아카데미, 제36회 '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등 전 세계 영화 시상식의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미 할리우드 시상식 예측 사이트 '골드더비'에서도 여우조연상 부문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해 이번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은 일찌감치 예견됐었다. 이에 윤 배우의 출중한 연기력은 더 이상 논할 단계를 넘어섰지만 연기상 트로피를 안게 된 후 그가 행한 영어 수상소감도 일품이었다.

그것은 그가 원어민처럼 완벽한 영어를 구사해서가 아니다. 비원어민으로서 무대와 언론 회견장에서 수상 소회를 당당하게 청중과 ‘케미’를 이룬 소통력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비원어민 기준으로 매우 능숙한 그의 영어실력이 전 세계의 영화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만약 그가 전문 통역사를 통해 수상소감을 전했더라면 더 세련된 영어 표현이 됐을지는 모르지만 그 의미는 덜 부각됐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글로벌 무대에서 비원어민이 국제공용어인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의사소통의 관점에서 친밀감이나 몰입도가 다르다. 원어민 수준에 이른 외국인이 영어로 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정도의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관점이 다르다. 이번 윤 배우의 수상소감과 뒤이은 기자 간담회에서 민감했던 두 단어는 단연 ‘snobbish'와 ’smell'이다.

그는 영국 사람을 지칭하며 snobbish라는 단어를 썼다. 사실 이 어휘는 매우 민감한 부정적 어감을 내포하고 있어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까다롭다. 그가 수상소감에서 쓴 이 말을 국내 매체는 처음에 ‘콧대가 높은’ ‘속물적인’으로 번역해 기사를 썼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상한 체하는’으로 표현을 다듬었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사전에서도 snobbish는 부정적인 말뜻(disapproving) 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윤 배우가 그 말을 썼을 때 객석에서는 웃음이 흘러 나왔다. 이에 해외 영어 문화권에서는 ‘Savage Granma'로 반응했는데 여기에 쓰인 savage란 단어도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한 국내 언론에서는 이를 ‘거침없이 솔직한 할머니’로 의역을 했다. 분명 snobbish나 savage는 모두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말이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품격 있는 국제행사 환경에서 비원어민이 행한 말이기에 긍정적 의미로 승화돼버린 격이 됐다. 일반적으로는 다른 격조 있는 어휘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품긴 윤여정이라는 아카데미상 수상자의 “튀는 표현”은 오히려 금상첨화가 됐던 것이다.

관심을 끈 또 하나의 단어는 smell이다. 윤 배우가 브래드 피트를 직접 만나본 분위기를 물어보려 리포터가 “What does Brad Pitt smell like?”라고 질문하자 윤 배우는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I didn't smell him. I'm not a dog'이라고 응수했다. 이것을 두고 한국 언론매체들은 최고 수상자에 대한 질문이 무례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smell을 ‘냄새’로만 생각하는 비원어민의 일방적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 영어 단어의 특별한 의미와 그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야기된 해프닝이었다. 이것은 '언어는 곧 문화'라는 명제를 설명하는 예가 된다. 사실 smell like는 유명 연예인과 같은 저명인사에 한해 ‘만나보니 느낌이 어떻더냐?’의 의미로 쓰인다.

어떻게 보면 아무에게나 쓰지 않는 아카데미상 수상자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특정 표현이다. 영어를 잘 하는 외국인으로서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영어권 사회는 개인 간에 남을 평가하는 것이 통용되지 않는 문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대중의 추앙을 받는 명사들에게는 이처럼 차별화된 뜻을 담고 있는 smell을 꺼리지 않고 쓴다고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윤 배우의 반응에 대해 언론은 ‘재치 넘친 위트’로 평가하고 있다.

사실 일반 표준 영한사전이나 영영사전에서 smell을 위와 같이 특별한 뜻으로 규정하고 있는 곳은 없다. 단지 영미권 사전 사이트 ‘어반 딕셔너리’(Urban Dictionary)는 ‘to feel' 'to undergo the experience of' 'to be aware of' 'to sense' 'to think'로 풀이하고 있다. 곁들여 그 의미를 '직관, 정감 또는 특정할 수 없는 다양한 근거들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으로 정의 하고 있다.

윤 배우가 받은 질문은 이 같은 의미로서의 smell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외국인에 대한 원어민 기자의 질문에 smell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과유불급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영어를 못한다’는 그의 솔직함에 호감을 느낀 해외팬들은 그의 반응을 위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윤 배우는 오히려 언어감각의 소유자로 칭송을 받게 된 셈이다. 결국 배우 윤여정은 연기력으로 뿐만 아니라 비원어민의 영어능력으로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글로벌 셀럽문화의 지평을 넓혔다.

<편집자 주>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는 코리아타임스에 다년간 영문 칼럼을 기고하며 중앙일보 외 주요 언론사의 해외 문화예술 교류를 전담 후 예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EO 대표를 역임했다. ‘영어로 만드는 메이저리그 인생’ ‘예술경영리더십’ ‘문화예술리더론’ ‘긍정으로 성공하라’ ‘경쟁의 지혜’ 등 14권을 저술했으며 문화커뮤니케이터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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