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플레이더상상, 스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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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우리는 종종 ‘만약에’라는 말을 서두에 두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연극 ‘관부연락선’'(연출 이기쁨, 제작 플레이더상상, 스텝스)은 일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도쿠주마루 관부 연락선을 배경으로 하며 윤심덕이 살아있다는 상상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 배에 숨어 지내는 홍석주가 바다에 뛰어든 윤심덕을 구하며 인연을 맺게 된다.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던 서로의 모습에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며 각자의 희망을 그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극 ‘관부연락선’은 실존 인물 ‘윤심덕’과 허구 인물 ‘홍석주’로 1920년대의 사뭇 다른 두 여성을 세웠다. 가진 거는 없지만 용기만큼은 가득한 ‘홍석주’와 화려한 모단걸이지만 외로움이 있는 ‘윤심덕’이 관부연락선 화물 칸 안에서 운명적인 하룻밤을 보내며 어떻게 친구가 되어가는 지 지켜보며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홍석주’ 역의 배우 김려원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김려원은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호프’ ‘난설’ ‘리지’, 연극 ‘432Hz’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에 다수의 작품에 참여해 안정된 연기로 관객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려원은 연극 ‘관부연락선’과의 첫 만남으로 “창작진께서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어떤지 알고 싶어서 리딩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셔서 연기를 하고 있는 친동생과 함께 리딩을 했었다. 그러고 나서 작품이 어떠냐고 배우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하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다. 그때는 작품을 분석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읽었는데 궁금증 없이 술술 읽혀서 첫 만남부터 좋았다”고 전했다. 이어 리딩에 참여했던 작품을 무대에 올렸을 때 기분으로 “동작으로 직접 보여주는 부분처럼 쭉 읽었을 때보다 재미있는 부분이 추가돼서 더 재미있다”고 설명했다.

대중이 알고 있는 윤심덕은 그에 대해서 여러 가설이 있지만 드라마 ‘사의 찬미’ 같은 단아한 모습의 윤심덕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해탄에 몸을 던지고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서 어딘가에 살고 있는지도, 죽었는지도 모르는 윤심덕을 다른 관점으로 그린 작품이라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 부담감도 있었을 터. 김려원은 “영화와 드라마에 윤심덕은 많은 소재로 이용되었는데 늘 진중하고 스타로서의 심덕이를 보여줬다면 ‘관부연락선’에서는 귀엽고 우리 옆에 있을 거 같은 마음이 가는 심덕이어서 신선하면서도 걱정이 됐다. 누군가는 ‘나는 심덕이는 멋진 인물로 기억할 거야’라고 하면 어쩌지 싶었지만 예술은 다양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이렇게 보여주는 것도 좋은 거 같다”고 밝혔다.

제이민, 김려원.(제공=플레이더상상, 스텝스)
제이민, 김려원.(제공=플레이더상상, 스텝스)

다음은 김려원과 일문일답이다.

Q. 맡은 인물 ‘홍석주’를 소개해달라.

“홍석주는 심덕이와 대조되는 인물이고, 화려해 보이는 심덕과 달리 가진 게 정말 하나도 없다. 돈도 없고 가족도 없는 사람이다. 있는 거라고는 딸 하나인데 심지어 딸에게 제가 없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고, 이루지 못할지언정 정의로운 사람인 거 같다.”

Q. 석주는 관부연락선에 숨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물에 빠진 심덕을 구하면 발각돼서 상황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는데 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석주가 늘 독립투사가 되고 싶어 하는데 쉬운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서 군인이 되고 싶다는 사람도 많이 보지 못했고 그런 마음을 가진다는 게 대단한 거 같다. 그런데 석주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런 상황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몸이 먼저 반응한 거다. 지하철에서 누가 떨어져도 앞뒤 생각 안 하고 구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Q. 석주는 절에서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와서 자신이 구한 사람이 당대 최고의 스타 윤심덕인지도 몰랐을 거 같다.

“맞다. 석주는 윤심덕이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없고 몰랐을 거 같고 그래서 친구처럼 더 막 대할 수 있었다. 윤심덕이라는 브랜드를 보고 대한 사람이면 마음을 내어주지 않을 거 같다. 그 시절에 누가 윤심덕을 심덕이로 대하겠냐. 저도 지금 TV를 안 봐서 누가 유명한지 잘 모른다. 석주는 절에 갇혀 지냈기 때문에 윤심덕을 모르고 ‘네가 뭔데? 나는 너 모르는데?’라고 대하고 급사 뽀이가 ”여왕님~“ 이러지 않았으면 그냥 노래하는 애 정도라고 생각했을 거 같다.”

Q. 물에 빠진 윤심덕을 살려줬더니 사실 죽으려고 뛰어든 걸 알았을 땐 어땠나. 물에 빠진 사람 살려줬더니 죽으려고 했다는 걸 알면 적잖이 충격일 거 같은데.

“제 남편이 모단걸이랑 바람이 나서 그런지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모단걸이든 누구든 살려내는 게 맞지만 '죽으려고 한 거를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살린 건가? 저게 그냥 확!' 싶고 옷 망쳤다고 사랑'을 망쳐놨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게 어이없고 화가 난다."

Q. 티격태격하던 석주와 심덕이 점점 마음을 여는데 석주는 언제 마음을 열게 되었나.

“심덕이가 ‘사의 찬미’를 부르고 석주가 그 노래에 감동하고 위로를 받았을 때 ‘저 사람 대단한 사람’이라고 처음으로 느꼈을 거 같다. 심덕을 몰라봤던 민망함이 풀리면서 그 사람의 귀여운 면을 보게 되고 또한 아픔과 진심을 함께 보게 되면서 마음이 넘어가게 된 거 같다.”

Q. 화려한 스타였던 윤심덕의 아픔과 레코드 사장이 그를 이용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심덕이가 불멸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어차피 죽었으니까 덤으로 살 거야“ 이러는데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래, 저 사람은 잃을 게 많아서 불행하고 힘들고 나는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데 뭘 힘들어하지?’란 생각이 든다. ‘쟤 말대로 한번 죽었다고 생각하면 못할 게 뭐가 있어, 아님 말지’처럼 심덕이를 통해서 용기를 얻게 되는 거 같다.”

제공=플레이더상상, 스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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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모단걸 윤심덕의 예쁜 옷과 석주의 옷을 바꿔 입을 때 석주가 부끄러워하지만 내심 즐기는 모습이 짠하기도 했다. 어땠나.

“상상은 계속했을 거 같다. ‘나도 부모님이 있었으면 예쁜 옷도 입었겠지?’처럼 생각은 하지만 입을 기회가 전혀 없었으니까. 처음 보는 여자가 예쁜 원피스를 입으라고 했을 때 너무 쑥스러웠을 거 같다. 그런데 지금 안 입으면 영영 못 입는 옷이고 겨우 자존심 때문에 안 입겠다고 버티다가 ”네가 사정하니까 입어준다. 내가 입고 싶어서 입는 거 아니야“면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한다. 하지만 그 옷을 입고 심덕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처럼 살았으면 나는 그렇게 남자 때문에 죽으려고 하거나 아내 있는 남자랑 정의롭지 못하게 안 살아“라고 말하지만 화려하게 보인 옷을 입었을 때 불편함과 갖춰야 하는 자세를 느끼면서 ‘저 여자도 내가 말한 거처럼 아픔이 있었겠구나, 내가 저걸 부러워했는데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불편함과 힘듦을 가지고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을 거 같다.”

Q. 심덕에게 ‘사의 찬미’ 가사를 써달라는 석주의 심경은.

“가사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처음 듣고 감명받은 노래인데 딸에게 들려주지 못하지만 “이런 노래의 가사가 있다, 염불밖에 못 듣겠지만 이런 아름다운 노래가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라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제가 딸에게 할 수 있는 게 가사 가르쳐주는 거뿐이다.“

Q. 석주가 극의 초반부터 수첩에 일기 같은 걸 쓰는데 어떤 의미인가.

“향아(석주 딸)에게 쓰는 엄마의 편지다. 일기장이라고 하기는 거짓말 같았다. 일기장의 형식으로 쓴 편지이다. 일기이지만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향아가 멋진 여자로 컸으면 좋겠는 마음에 그 아이를 절에 두고 온 거라 향아에게 쓴 편지이다.”

Q. 마지막에 딸을 보러 가지 않고 심덕에게 수첩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다가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심덕이를 만나고 ‘내가 너였다면’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너였다면 우리 향아한테 좋은 엄마가 되고 함께하게 됐을 텐데’라고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심덕이 ”나 로마에 가서 살 거야. 나 죽었는데 별거 있어?“라고 할 때 ‘내가 그런 엄마가 되자! 해보자! 안되면 로마로 보내버리지 뭐!’ 이렇게 심덕이에게 용기를 얻고 희망을 본 거 같다. ‘좀 못났으면 어때~ 적어도 나를 버리고 간 내 엄마같이 되지는 말자’는 마음이 들었다.”

제이민, 김려원.(제공=플레이더상상, 스텝스)
제이민, 김려원.(제공=플레이더상상, 스텝스)

Q. 연극 ‘관부연락선’에서 김히어라, 김주연, 제이민 세 명의 윤심덕이 나오는데 어떻게 다른가.

“주연는 대사에서 “우진 씨는 새침데기, 나는 왈녀”에서 왈녀에 중심을 많이 둬서 왈가닥답게 연기하고 밝고 참새 같은 느낌이다. 팬들이 주연이는 치와와 같고, 저랑 제이민이 반려견을 키우는데 제이민은 마린이고 저는 푸딩이로 서로 무대에서 싸우고 있는 거 같다고 하더라. 히어라는 위트가 많은 심덕이다. 제이민 심덕이 가장 진지한 면이 많다. 주연, 히어라, 제이민이 밝은 명도가 순서가 점점 줄어든다. 주연이가 가장 밝고 마지막에 “너 딸한테 가라”고 할 때도 저를 엄청 혼낸다. 이때 혼내야 분이 풀린다고 해서 저는 많이 혼나고, 제이민은 설득하는 느낌이다. 히어라는 화는 나지만 이야기하려는 느낌이다. 그리고 셋 다 급사 뽀이 앞에서 모습이 달라서 재미있다.“

Q. 김려원 배우는 ‘리지’, ‘호프’, ‘베르나르다 알바’처럼 여성극이거나 여성이 서사의 중심인 작품을 여러 편 했는데, '관부연락선'은 어떻게 다른가.

“‘관부연락선’은 성격이 다른 극인 거 같고 전 작에서처럼 큰 사건이나 아빠가 죽고 난리 나는 게 아니라 일상에 가까워서 관객에게 친근하게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내 친구의 이야기일 수 있고 내 이야기 또는 우리 엄마 이야기 일수 있다. 시대에 대해서 크게 들어가거나 깊게 들어갈 필요가 없는 따뜻함을 주는 극이다.“

Q. 홍석주에게 한마디 하자면.

“멋진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힘들게 아무것도 없이 살았는데 어떻게 멋진 꿈을 생각했을까. 독립운동의 길로 나라를 위해서 살겠다는 건 너무 대단한 사람인 거 같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이야. 자기 눈앞에 가진 게 없으면 당장 앞에 갖고 싶은 걸 생각할 텐데 큰 걸 생각하다니 대단하다.

Q. 홍석주로서 윤심덕에게 한마디 하자면.

“너는 내가 만난 그리고 만나게 될 여자 중에 가장 멋진 여자야.”

김려원은 인터뷰 내내 연극 ‘관부연락선’으로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곳곳에 드러냈다. 작품에 대한 애정 어린 생각과 캐릭터 분석으로 누구보다 홍석주 역에 녹아있는 모습에 앞으로 그가 어떤 캐릭터를 만날지 궁금해졌다. 탄탄하고 안정된 연기로 관객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기까지 걸어온 그의 발자취를 가늠해보고 앞날을 응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한편, 연극 ‘관부연락선’은 '홍석주' 역에 김려원, 황승언, 혜빈, '윤심덕' 역에 김히어라, 김주연, 제이민, '급사 소년' 역에 이한익, 최진혁이 연기하며, 5월 9일까지 대학로자유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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