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선 칼럼니스트©열린뉴스통신
곽병선 칼럼니스트©ONA

2018년 2월. 미국 Purdue University 심리학과 연구진들은 “How much money makes individuals around the world happy?"라는 주제로 Gallop World Poll에 의뢰, 세계 164개국의 170만명을 표본 추출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소득이 어느 일정한 수준에 달하면 소득이 증가하여도 행복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평균적으로 1인 기준 연 소득이 9만 5,000달러일 때 행복 지수가 최고점에 달하고 소득이 9만 5,000달러를 초과할 경우 오히려 삶에 대한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의 Louis Tay교수는 일정 소득을 초과하면 오히려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이유로 물질적 욕구 증가와 사회적 비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욕구의 최고점에 도달한 사람은 더 많은 물질을 얻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집착, 스스로 불만족을 느끼고 행복지수가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소득수준에 달할 때까지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나 초과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상대적 부족감을 겪게 됨을 알려 준다.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읽은 펜실베니아대학 교내 신문에 난 기사를 지금도 가끔씩 생각하곤 한다. “The happiest men in the world"라는 제목의 기사는 교내 신문 기자가 학교 근처에 있는 슈퍼 앞에서 잡담을 하며 앉아 있는 흑인 4명을 접하면서 쓴 현장에서 취재한 글이었다. 평소 늘 웃는 모습인 그들을 눈여겨 본 기자는 과연 거지나 다름없는 저들이 웃는 이유는 뭘까 하는 호기심으로 취재를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배고프거나, 맥주 마시려 돈이 필요하게 되면 각자 흩어져서 1달러를 구하러 나서는데, 슈퍼에서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노인들에게 가서 도와주며 25센트 동전 하나를 받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각자의 몫을 채우고 슈퍼 근처로 다시 돌아오면 모은 돈으로 샌드위치나 맥주를 사와서는 함께 나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1달러뿐이었다. 필요한 것은 1달러이고, 1달러를 구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나 다툼이 있을 수 없었다. 기사는 그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하며 끝을 맺는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월18일 파기환송심에서 뇌물공여 등의 혐의와 관련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진보 매체는 재벌개혁을 소리 높여 요구했던 ‘촛불 시민들’이 이뤄낸 성과라며 이 부회장의 실형 선고는 총수 일가의 불법·비리로 기업이 타격을 받는 이른바 ‘오너 리스크’를 해소하는 전환점이 되고, 경영권 승계 등 한국 재벌의 고질적 폐해를 혁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 매체에서는 뇌물죄가 되려면 뇌물을 준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강요당한 사람이 뇌물 공여 범죄자가 돼 버렸다며 기업이 현재 정권의 요구를 거절하면 당대에서 보복을 걱정해야 하고, 거절하지 않으면 다음 정권에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 대한민국 기업의 숙명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상반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시각과는 별개로 그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사건의 본질이야 어떻든 깊은 실망과 좌절 그리고 분노로 자신이 물질적으로 가지고 이룬 것만큼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자율적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누구나 소득을 창출하기 위해서 생산적 활동을 해야만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계층 간의 소득의 격차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문제는 소득 격차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2019년 6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격차는 너무 크다'는 의견에 '매우 동의' 39.7%, '약간 동의' 45.7% 등 격차가 크다는 의견이 85.4%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공정성에 대한 인식도 문제로 대두되었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데 부유한 집안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 비율은 80.8%('매우 중요' 31.7%, '대체로 중요' 49.2%)로, 중요하지 않거나 보통이라고 생각한 비율(19.2%)보다 훨씬 높았다. '한국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려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에 대한 동의 비율도 66.2%(매우 동의 14.3%, 약간 동의 47.9%)로 절반을 넘었다.

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낮아지지 않는 한 사회 전반적인 불안정성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공정한 계층 이동이 보장되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정책이나 노동시장 개혁 등 다양한 정책들이 제시되고 시행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해결책으로 작동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근원적으로 계층 간의 상호 존중의 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이기기 위해 온 힘을 쏟아 경기에 임하지만 승패가 결정되면 서로에게 축하와 위로를 보내는 스포츠정신이 사회 전 분야에서 정착 되어야 한다. 존 롤스 (John Rawls)는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그것이 사회 구성원에게 그 불평등을 보상할 이득을 가져온다면 정당한 것이라고 했다. 소수자의 강자가 이익을 취한다 해도 그로 인해 다수의 약자들의 처지가 더 향상된다면 부정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우대 받을 수 있는 지위는 기회 균등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공개 되어야 하며, 교육을 받을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다면 재능의 차이에 따른 불평등은 인정되어야 했다. 누구나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차등적인 직위를 누린다 하더라도 부정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그의 이론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보듯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중도적 타협안으로의 보여 진다.

그러나 평등을 강조한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는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개인이 체제 내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할 기업가 정신, 도전 정신, 창의성 등의 상실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국가가 분배적 정의를 내세워 고소득층 및 기업가들에게 높은 과세를 부과하고, 지나치게 간섭과 규제를 늘린다면 이는 결국 기업의 경영자들의 의욕 저하로 이어져 생산성 저하라는 악순환의 길로 접어들게 한다. 서유럽의 사회주의 정권의 집권으로 시행된 복지시스템은 실업자를 늘려 이로 인한 경기 침체로 사회 전체적인 부의 하락을 초래했다. 기업의 도전의식 제고와 창의성 독려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신규 투자가 증가하면 그로 인한 이득은 많은 사람들에게 임금 상승과 일자리 창출 등으로 이어 지는 경제의 선순환 사이클로 유도할 수 있다. 조세 정책을 통해 다수의 약자를 보호할 수 없고, 세계화 시대에는 자유경쟁을 벗어날 수 없으므로 기업의 의욕을 저하하는 정책은 결국 국부의 손실로 이어 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하여 경제정책의 틀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세계 10대 경제권에 속하는 한국의 미래가 염려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의 실종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잉여 노동력이 감소하고, 임금은 상승하며, 성장률은 낮아진다는 루이스 전환점(Lewisian turning point)을 지났다. 그럼에도 우리 경제는 저임금노동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미래성장 사업과 새로운 기술 집약형 사업으로의 산업구조 전환이 미진하여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우선적으로 기업에 있다. 슘페터(Joseph A. Schumpeter)는 한 기업가가 혁신을 통해 이윤을 얻게 되면 그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행위는 곧 바로 다른 기업에게 모방되어 결국에는 사회 전체적으로 점차 이윤이 소멸되는데, 경기 순환은 이와 같은 창조적 파괴가 주기적으로 이어져 나타나는 자본주의 경제의 고유한 현상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혁신과 미래성장사업에 전력하겠다는 선언적인 발표는 자주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실행 의지는 와 닿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혁신과 기술개발 보다는 기존 사업의 안정적 관리에 치중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기업가 정신이 많이 약해지고 있는 현상을 보게 된다. 기술 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에 앞장서는 기업가 정신의 회복이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하는 한국경제의 커다란 과제이다.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혁신을 추구해 나갈 때 비로소 다음 사회로 진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창업을 가장 희망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각 대학 별로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 기업가 정신 육성 재단인 유잉 매리온 카우프만재단에 따르면 1985년 미 전역 대학에 250여개에 불과했던 창업 지원 교육 프로그램은 2013년에는 5000여개로 증가했다. 연간 40만명 이상의 학생이 대학에서 창업 관련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반면 국내 대학 졸업생의 80% 이상은 대기업을 희망한다고 한다. 특히 공무원을 희망하는 수가 증가하고 있다. 젊은 대학생은 물론 우리 모두가 역경을 극복해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려는 꿈과 의지가 있는지, 혹시 꿈을 상실하고 나라와 사회 탓만 하면서 체념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진정한 ‘부’는 꿈과 열망이지 풍족한 생활, 부동산, 그리고 넉넉한 노후생활 그 무엇도 아니다. 70년대와 80년대를 겪은 세대는 가난을 유산으로 남기지 않으려는 분명한 꿈과 열망이 있었다. 그에 힘입어 기적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다. 자본도 없고, 자원도 부족한 작은 나라가 온갖 역경을 극복하며 경제 성장을 일구어 다음 세대에게 진보된 사회를 물려주었다. 지금의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전의 세대와는 달리 산업 전반에서의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그에 상응하여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앞으로 다가올 인구절벽과 소비절벽이라는 장애를 극복하야 한다. 안전한 울타리에서 자신만을 위한 편안함을 추구할 것인지, 자신과 다음 세대를 위한 도전을 선택할 것인지를 선택할 시점에 있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변화할 때지만 가장 먼저 국민이 변해야 한다. 한 국가의 경제성장 원동력은 국민들의 경제의지(Will to economize)라고 주장한 아서 밀러(Arthur Lewis)의 말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현실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이미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의 흐름마저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로 야기되는 어려움은 자칫 다음 세대의 유산이 될 수 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서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같은 성공사례가 자주 등장하고,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인재가 배출되는 사회가 되도록 국민 각자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업도 변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은 기술개발과 혁신에 전력하여 미래 먹거리 사업을 창출하는 선봉이 되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과 기술창업기업이 성공적으로 랜딩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어야 한다. 자체적인 기술개발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사업영역을 창출하는 중소벤처기업들이 대기업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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